1101_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6:19-20)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삶의 목적 중에 제일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겁니다. 그러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우리 사회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결정으로 살아가는 법에 익숙합니다. 지금과 같이 개인화되고 포스트모던화된 사회에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1.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합니다(20절).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권리가 있고 자율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의 것을 자기 맘대로 하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우리는 물질의 노예요, 세상 사상의 노예요, 감정과 상처의 노예입니다. 우리가 원하는대로 선을 행하지 못하고 사는 삶은 바로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겁니다(요8:34). 지금도 우리는 환경과 상황과 능력의 한계에 갇혀서 옴싹달싹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더 이상 죄와 세상에 매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와 세상의 굴레에서 해방되었습니다(롬6:18,8:2).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자녀이자,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 맘대로, 내 뜻대로 살 것이 아니라(어차피 우리는 세상과 죄의 노예라서 자유롭게 살수도 없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첫 번째는 내가 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것이며, 내 뜻대로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함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2. 하나님의 뜻인 선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됩니다(마5:16).
내 뜻대로, 나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은 결국 세상의 노예로, 돈과 쾌락의 노예로, 또 세상 우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들은 다 이기심이요 갈등이요 불안이요 불평이요 죽음과 낙망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선을 이루기 시작합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고, 영생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며 살게 됩니다. 결국 그 열매인 선한 행위가, 선한 삶이 하나님께 기쁨이요 영광이 되게 됩니다(벧전2:12).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릴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전파하는 길이요,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순종함으로써 또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려면 지금 할 수 있는 한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3. 내 몸이 거룩한 성전임을 기억, 그것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됩니다(19절).
이제 죄의 종이 아니요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낮게 여겨서는 안되는 것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명칭 안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과 하나님의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이라는 특권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의지하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엡2:22). 이미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면, 우리는 그 성전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무를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그 하나하나의 헌신과 행위가 하나님께는 선한 것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가 됩니다.

결론 :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의 종이요, 어둠의 노예이니까,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생명이 됩니다. 또 그 지위에 맞게 선을 행하며, 성령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장소로 부족함 없게 하려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 모든 시도와 노력이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기쁨이 됩니다. 우리 삶에는 선한 열매, 영원한 영광이 됩니다.

글쓴이 susueoul,

1025_말씀의 능력(딤후3:15-17)

오늘 저녁부터 성경일독학교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정신없는 때에 왜 우리는 성경일독까지 하려는 걸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가지는 능력은 오직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 삶 가운데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같이 나누기를 바랍니다.

1. 말씀은 어그러지고 이탈한 우리의 삶을 바르게 인도합니다(16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에도 그조차 알지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올바른 길, 제대로 된 길을 가르쳐 주는 가르침이나 스승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말씀은 우리에게 바르게 사는 길, 승리하는 길, 인생을 보람 있게 사는 길을 교훈으로 가르쳐 줍니다. 잘못된 길을 갈 때면, 말씀이 우리를 후리쳐서라도 가르칩니다. 마음에 따끔한 깨우침을 주셔서 우리가 정신차려서 바른 길로 돌아오도록 역사하십니다. 이처럼 말씀은 우리를 교육합니다. 아무리 윤리교육을 한다고 아이들이 윤리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고, 공중도덕을 정립해서 선전한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이 되어서, 스스로 복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모든 역할을 하나님의 말씀이 하십니다. 말씀의 올바름이, 진리됨이, 이치가 우리를 자발적으로 순종하도록 만드십니다.

2.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십니다(17절).
아이들에게 바른 길, 마땅한 바를 가르치면 대게는 두가지 이유 때문에 그것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첫째는 마음이 감동받지 못해서 그 가르침을 못 받아들이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마음에 감동을 되어서 그 가르침대로 살고는 싶은데,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무능함 때문에,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 때문에 따르고 싶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우리에게 모든 필요한 가르침을 주실 뿐 아니라, 그 말씀을 들으면서 그 말씀 대로 살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더 나아가 그 말씀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신기하게 생기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인 것이지요. 그래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우리 안에 자꾸 선한 일에 대한 열망과 지혜가 생겨나서 그 일을 전부하지 못하더라도 한두가지라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우리가 성경일독을 통해서 이런 능력을 사모합니다.

3. 말씀은 가장 근본적인 영적인 구원의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15절).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교훈과 바르게 함과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은 단지 우리를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의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을 위함이 아닙니다. 이는 바로 영적인 중생의 결과요 열매입니다. 성경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주인되심과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그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새로운 생명 즉 영생을 얻게 된다는 가르침이 가장 중심에 있습니다. 영적인 재탄생없이, 거듭남 없이 도덕적인 성장은 겉모습에 불과하며, 우리의 가장 깊숙한 곳에 박혀 있는 죄성과 부도덕함과 이기심은 영적인 재탄생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즉 옛 자아가 죽고, 새로운 자아가 탄생해야, 그 다음부터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선한 일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우리를 진정한 출생의 목적과 의미를 다 실행하게 인도해 줄 유일한 인도자이며, 가이드입니다. 이 험악한 사태 속에서도 우리가 깨어 기도하며, 영적으로 패배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성경일독에 참여하시든지, 말씀을 항상 가까이 하시든지, 말씀의 능력과 공급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글쓴이 susueoul,

1018_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함(롬8:14-17)

우리가 지난주에는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눴습니다. 전능하신 엘 샤다이 하나님이 계시다면 지금 우리가 이런 코로나 사태를 두려워할 이유도 없고, 그것 때문에 경기가 나빠지고 상황이 힘들다고 낙담하거나 미래를 암울하게 볼 필요도 없음을 나눴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우리와 같이 부족하고 연약한 자를 도와주실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또 보호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지만, 우리와 같이 죄악되고 또 배은망덕한, 더러운 자들을 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사랑해주시고 전능하신 권세로 보호하신다고 확신할 수 있나요? 그건 하나님의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의 문제입니다.

1. 아직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건 내가 종의 영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15절).
우리가 예전에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모를 때 우리는 사탄 마귀의 영향력 하에 있는 종의 영을 받아 죄의 종, 사탄 마귀의 노예였었습니다. 그래서 죄성이 시키는대로, 세상에서 조종하고 세뇌시킨 대로 물질에 매여서, 세상 가치관에 매여서 몇십년이고 살아왔었습니다. 비록 지금 교회 나오고 말씀을 들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는 듣고 배웠지만, 아직은 그런 축복된 자격과 위치는 익숙하지 않은 겁니다. 오히려 아직도 종의 영의 지배를 받아 죄가운데, 쾌락 가운데, 세상 영향력 가운데 살던 때와 같이 지금도 세상의 영향과 세상 습관, 죄성의 이끌림에 끌려다니는 것이 더 익숙하고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그 결과가 바로 두려움이며 불안함입니다. 하나님의 양자는 되었는데, 그 사실을 못 믿고 언제든지 죄의 노예로 탈바꿈할까봐 두려운 것이고 아직도 하나님의 양자가 된 사실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양자로서 어떤 권세와 축복을 받는지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2. 성령과 또 은혜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됨을 기억해야합니다(16절).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양자된 것을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사실 오랜만에 이렇게 함께 모여 예배하는데, 이렇게 예배의 자리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셔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14절). 거기다, 수시로 말씀이 들리고 깨달아지고, 기도하면 응답을 받고, 또 지금과 같이 낙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소망이 있고 위로가 있다면, 그건 우리 안에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고 계시다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성령님의 운행하심과 교회와 교인을 통한 사랑의 섬김 등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과 자녀로서의 축복을 배우고 깨닫고 누릴 수 있게 됩니다.

3. 성령과 동행에서 나온 친밀함이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알게 해줍니다(17절).
처음 양자된 사람이 부모님을 부모라 부르기도 익숙치 않지만, 부모님의 사랑과 배려로 익숙해지면서 그런 거리감과 어색함이 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처음 하나님의 양자된 사람이 성령의 역사와 말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된 사실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함께 함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의 존재가, 전능하심이 낯설거나 멀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바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과 헌신으로 직접 보여주신 바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해야할 것은 지속적으로 성령과 동행함으로 하나님과 친밀해 지는 것입니다.

결론 : 지금 행복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이시고, 그분과 성령의 역사하심과 은혜로 친밀해진다면, 이런 상황 속에서도 기뻐하며 평안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되길 소원합니다.

글쓴이 susueoul,

1011_시편 91:1~4

우리는 자기 위주로 세상을, 상황을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내 마음이 기쁘면 상황도 좋아보이는 거고, 아무리 상황이 좋고, 사람들이 즐거워해도, 내 마음이 어두우면 모든 것이 다 부정적입니다. 똑같은 상황이 하나님에 대해서도 적용됩니다.

1. 자기의 능력이 부족하고 부정적이면 하나님의 능력도 부정하게 됩니다(마22:29)

우리 상황이 부정적이고 내 능력이 부족하면 하나님의 능력도, 지혜도 부정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사두개인들도 자신이 부활을 경험해보지 않았으니까,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이 없다고 단정해 버립니다(마22:32).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도, 하나님의 말씀도 이해하지 못하고 부활의 능력을 부정하는 겁니다. 우리가 부족하다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오, 지금도 우주를 유지하고 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한강의 기적을 경험한 우리는 불가능에 대해서 단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우리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는 엘 샤다이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1절;창17:1).

아브라함도 자신이 늙고 사라도 늙은 상황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라를 통해 자녀를 주신다는 약속을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불가능하더라도 하나님에게는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한 하나님(창17:1)이셔서 다 늙은 육신 가운데에서도 임신이 가능하게 하십니다. 야곱도 아무데도 의지할 곳이 없을 때, 그가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까, 큰 가족을 이루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아무리 우리 삶이 가능성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다 부정적이어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이 다 가능합니다. 불가능이 사라집니다. 그것은 우리 나라에서도 일어나는 일이고, 우리 삶 가운데에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의 지헤와 능력으로 이루는 것은 극히 적고, 하나님께서 크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셔서, 이런 생명과 평안 가운데 있을 수 있는 겁니다. 아무리 코로나가 답답하다고 하더라도, 죽은 자도 살리시는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피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와 요새와 의지가 되어 주십니다(2절).

3. 전능하신 엘 샤다이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면 전염병도 이깁니다(3절).

백신이나 치료제가, 또는 좋은 의료제도나 뛰어난 의사가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다잡아주시지 않으면 곳곳에서 감염을 일으키는 자들이 일어날 수도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나님의 보호가 나타나는 겁니다. 우리가 경건하지 못해도 하나님 의지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법입니다. 야곱도 경건하지 못할 때, 가정 파괴범이던 시절부터 전능하신 엘 샤다이 하나님을 만나서 보호를 받고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죄인인 야곱이 회개하고 다듬어져서 믿음의 조상이 될만한 자가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훈련시키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 지금 우리는 답답한 현실 가운데에서 낙망하기 쉽습니다. 우리에게는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의지와 피난처 되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 의지해서 오늘도 승리하고, 미래의 축복에 참여하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1004_우리 가족은 어디로?(왕상 2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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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온 가족이 함께 지낼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지난 추석 연휴에는 더더욱 가까이 지내느라고 고생들이 많으셨을 겁니다. 이런 때 우리가 잘못하면 가정의 화목을 깨뜨리기 쉽습니다.

1. 나는 선한 영향력도, 악한 영향력도 가족에게 미칠수 있는 존재입니다(약3:8).
세상에서는 나 자신은 별 능력도 없고, 중요성도 없지만, 내 가족들과 주변 친척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붙어지낼 때, 기분 나빠서 화를 내고, 나쁜 소리를, 비판적인 소리를 입으로 내면 내 주변 사람들은 나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 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나 때문에 죽어갑니다. 반면에 내가 화 나는 것도 참고, 격려의 말,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면, 내 가족들은, 주변 사람들은 나 때문에 위로 받고 격려받고, 소망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의 근원에 대한 축복이 나에게도 이루어지는 겁니다. 이런 때일수록 내가 큰 영향력을 지닌 중요한 존재임을 기억하면서 말과 행동에서 악을 빼내시기를 바랍니다.

2. 이세벨은 욕심과 불법적인 악행 때문에, 자신과 가정을 망치고 있습니다(10절).
본문에서 여왕 이세벨은 왕인 야합이 왕궁 옆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 하나를 얻지 못해 가슴아파하니까, 남편에게 그 포도원을 주려고 온갖 악을 꾸며댑니다. 장로들과 귀족들에게 거짓 증언자를 세워서 나봇이 하나님을 저주했다고 해서 돌로 쳐서 죽이라는 겁니다. 온 나라를 가진 여왕이면서 자기 욕심 때문에 죄 없는 한 사람을 죽게 할 뿐 아니라, 자기 부하들에게 그 악을 행하도록 사주를 합니다. 이런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도 평안할 수 없고, 만족하며 기뻐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런 탐욕의 사람들은 배우자나 자녀들도 힘들게 만듭니다. 매일 부족한 것만 찾으니까, 주변 사람들이 평안할 수없습니다.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스트레스 가운데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에는 탐욕과 불법적인 행위는 자기 자신도 망치고 자녀들도 망치게 됩니다.

3. 하나님께서는 탐욕과 불법에 대해서 개인과 가족 모두를 징벌하십니다(왕하9:37).
하나님께서는 이세벨과 같은 악을 가만 두지 않으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더 엄한 기준을 요구하십니다. 은혜 주신만큼 빛과 소금의 역할을 기대하십니다. 이세벨의 가족들은 모두 징벌 받습니다. 아합왕은 쓸모 없는 전쟁에서 죽임당하고, 이세벨은 건물에서 떨어져 개가 시체를 파먹고, 이세벨의 아들들도 모두 단명합니다. 다윗이 밧세바 사건 이후, 가족이 깨어지고, 반란을 만나고, 아들들이 죽게 되는 비참함을 경험한 것과 같이 탐욕과 불법에 대해서는 반드시 징벌이 있습니다. 그것을 떠나지 않으면 나와 가정 모두 엄청난 손해를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론 : 지금 우리는 영적 전투 가운데 있습니다. 가족을 지켜야 하는 사명가운데 있습니다. 우리 가정이 풍성한 기쁨과 은혜 가운데에서 은혜를 누리며 성장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자들에게 도덕은 소용이 없습니다.

글쓴이 susu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