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8_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함(롬8:14-17)

우리가 지난주에는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눴습니다. 전능하신 엘 샤다이 하나님이 계시다면 지금 우리가 이런 코로나 사태를 두려워할 이유도 없고, 그것 때문에 경기가 나빠지고 상황이 힘들다고 낙담하거나 미래를 암울하게 볼 필요도 없음을 나눴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우리와 같이 부족하고 연약한 자를 도와주실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또 보호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지만, 우리와 같이 죄악되고 또 배은망덕한, 더러운 자들을 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사랑해주시고 전능하신 권세로 보호하신다고 확신할 수 있나요? 그건 하나님의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의 문제입니다.

1. 아직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건 내가 종의 영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15절).
우리가 예전에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모를 때 우리는 사탄 마귀의 영향력 하에 있는 종의 영을 받아 죄의 종, 사탄 마귀의 노예였었습니다. 그래서 죄성이 시키는대로, 세상에서 조종하고 세뇌시킨 대로 물질에 매여서, 세상 가치관에 매여서 몇십년이고 살아왔었습니다. 비록 지금 교회 나오고 말씀을 들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는 듣고 배웠지만, 아직은 그런 축복된 자격과 위치는 익숙하지 않은 겁니다. 오히려 아직도 종의 영의 지배를 받아 죄가운데, 쾌락 가운데, 세상 영향력 가운데 살던 때와 같이 지금도 세상의 영향과 세상 습관, 죄성의 이끌림에 끌려다니는 것이 더 익숙하고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그 결과가 바로 두려움이며 불안함입니다. 하나님의 양자는 되었는데, 그 사실을 못 믿고 언제든지 죄의 노예로 탈바꿈할까봐 두려운 것이고 아직도 하나님의 양자가 된 사실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양자로서 어떤 권세와 축복을 받는지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2. 성령과 또 은혜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됨을 기억해야합니다(16절).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양자된 것을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사실 오랜만에 이렇게 함께 모여 예배하는데, 이렇게 예배의 자리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셔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14절). 거기다, 수시로 말씀이 들리고 깨달아지고, 기도하면 응답을 받고, 또 지금과 같이 낙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소망이 있고 위로가 있다면, 그건 우리 안에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고 계시다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성령님의 운행하심과 교회와 교인을 통한 사랑의 섬김 등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과 자녀로서의 축복을 배우고 깨닫고 누릴 수 있게 됩니다.

3. 성령과 동행에서 나온 친밀함이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알게 해줍니다(17절).
처음 양자된 사람이 부모님을 부모라 부르기도 익숙치 않지만, 부모님의 사랑과 배려로 익숙해지면서 그런 거리감과 어색함이 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처음 하나님의 양자된 사람이 성령의 역사와 말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된 사실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함께 함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의 존재가, 전능하심이 낯설거나 멀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바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과 헌신으로 직접 보여주신 바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해야할 것은 지속적으로 성령과 동행함으로 하나님과 친밀해 지는 것입니다.

결론 : 지금 행복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이시고, 그분과 성령의 역사하심과 은혜로 친밀해진다면, 이런 상황 속에서도 기뻐하며 평안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되길 소원합니다.

1011_시편 91:1~4

우리는 자기 위주로 세상을, 상황을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내 마음이 기쁘면 상황도 좋아보이는 거고, 아무리 상황이 좋고, 사람들이 즐거워해도, 내 마음이 어두우면 모든 것이 다 부정적입니다. 똑같은 상황이 하나님에 대해서도 적용됩니다.

1. 자기의 능력이 부족하고 부정적이면 하나님의 능력도 부정하게 됩니다(마22:29)

우리 상황이 부정적이고 내 능력이 부족하면 하나님의 능력도, 지혜도 부정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사두개인들도 자신이 부활을 경험해보지 않았으니까,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이 없다고 단정해 버립니다(마22:32).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도, 하나님의 말씀도 이해하지 못하고 부활의 능력을 부정하는 겁니다. 우리가 부족하다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오, 지금도 우주를 유지하고 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한강의 기적을 경험한 우리는 불가능에 대해서 단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우리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는 엘 샤다이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1절;창17:1).

아브라함도 자신이 늙고 사라도 늙은 상황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라를 통해 자녀를 주신다는 약속을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불가능하더라도 하나님에게는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한 하나님(창17:1)이셔서 다 늙은 육신 가운데에서도 임신이 가능하게 하십니다. 야곱도 아무데도 의지할 곳이 없을 때, 그가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까, 큰 가족을 이루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아무리 우리 삶이 가능성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다 부정적이어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이 다 가능합니다. 불가능이 사라집니다. 그것은 우리 나라에서도 일어나는 일이고, 우리 삶 가운데에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의 지헤와 능력으로 이루는 것은 극히 적고, 하나님께서 크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셔서, 이런 생명과 평안 가운데 있을 수 있는 겁니다. 아무리 코로나가 답답하다고 하더라도, 죽은 자도 살리시는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피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와 요새와 의지가 되어 주십니다(2절).

3. 전능하신 엘 샤다이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면 전염병도 이깁니다(3절).

백신이나 치료제가, 또는 좋은 의료제도나 뛰어난 의사가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다잡아주시지 않으면 곳곳에서 감염을 일으키는 자들이 일어날 수도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나님의 보호가 나타나는 겁니다. 우리가 경건하지 못해도 하나님 의지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법입니다. 야곱도 경건하지 못할 때, 가정 파괴범이던 시절부터 전능하신 엘 샤다이 하나님을 만나서 보호를 받고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죄인인 야곱이 회개하고 다듬어져서 믿음의 조상이 될만한 자가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훈련시키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 지금 우리는 답답한 현실 가운데에서 낙망하기 쉽습니다. 우리에게는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의지와 피난처 되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 의지해서 오늘도 승리하고, 미래의 축복에 참여하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1004_우리 가족은 어디로?(왕상 2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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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온 가족이 함께 지낼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지난 추석 연휴에는 더더욱 가까이 지내느라고 고생들이 많으셨을 겁니다. 이런 때 우리가 잘못하면 가정의 화목을 깨뜨리기 쉽습니다.

1. 나는 선한 영향력도, 악한 영향력도 가족에게 미칠수 있는 존재입니다(약3:8).
세상에서는 나 자신은 별 능력도 없고, 중요성도 없지만, 내 가족들과 주변 친척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붙어지낼 때, 기분 나빠서 화를 내고, 나쁜 소리를, 비판적인 소리를 입으로 내면 내 주변 사람들은 나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 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나 때문에 죽어갑니다. 반면에 내가 화 나는 것도 참고, 격려의 말,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면, 내 가족들은, 주변 사람들은 나 때문에 위로 받고 격려받고, 소망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의 근원에 대한 축복이 나에게도 이루어지는 겁니다. 이런 때일수록 내가 큰 영향력을 지닌 중요한 존재임을 기억하면서 말과 행동에서 악을 빼내시기를 바랍니다.

2. 이세벨은 욕심과 불법적인 악행 때문에, 자신과 가정을 망치고 있습니다(10절).
본문에서 여왕 이세벨은 왕인 야합이 왕궁 옆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 하나를 얻지 못해 가슴아파하니까, 남편에게 그 포도원을 주려고 온갖 악을 꾸며댑니다. 장로들과 귀족들에게 거짓 증언자를 세워서 나봇이 하나님을 저주했다고 해서 돌로 쳐서 죽이라는 겁니다. 온 나라를 가진 여왕이면서 자기 욕심 때문에 죄 없는 한 사람을 죽게 할 뿐 아니라, 자기 부하들에게 그 악을 행하도록 사주를 합니다. 이런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도 평안할 수 없고, 만족하며 기뻐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런 탐욕의 사람들은 배우자나 자녀들도 힘들게 만듭니다. 매일 부족한 것만 찾으니까, 주변 사람들이 평안할 수없습니다.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스트레스 가운데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에는 탐욕과 불법적인 행위는 자기 자신도 망치고 자녀들도 망치게 됩니다.

3. 하나님께서는 탐욕과 불법에 대해서 개인과 가족 모두를 징벌하십니다(왕하9:37).
하나님께서는 이세벨과 같은 악을 가만 두지 않으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더 엄한 기준을 요구하십니다. 은혜 주신만큼 빛과 소금의 역할을 기대하십니다. 이세벨의 가족들은 모두 징벌 받습니다. 아합왕은 쓸모 없는 전쟁에서 죽임당하고, 이세벨은 건물에서 떨어져 개가 시체를 파먹고, 이세벨의 아들들도 모두 단명합니다. 다윗이 밧세바 사건 이후, 가족이 깨어지고, 반란을 만나고, 아들들이 죽게 되는 비참함을 경험한 것과 같이 탐욕과 불법에 대해서는 반드시 징벌이 있습니다. 그것을 떠나지 않으면 나와 가정 모두 엄청난 손해를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론 : 지금 우리는 영적 전투 가운데 있습니다. 가족을 지켜야 하는 사명가운데 있습니다. 우리 가정이 풍성한 기쁨과 은혜 가운데에서 은혜를 누리며 성장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자들에게 도덕은 소용이 없습니다.

0927_지금이 미래를 만들어갑니다(느6:14-17)

지금처럼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요? 우리의 교회도, 비즈니스도, 공부도 진척이 있을수가 없는데, 도대체 우리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 걸까요? 오늘 답답한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면서 미래를 만들어가는 느헤미야를 통해 지혜를 배우길 원합니다.

1. 느헤미야는 가장 힘든 시기,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미래를 만들어갑니다(15절).
느헤미야는 바사의 왕국에서 부귀영화를 다 버려두고, 예루살렘에 와서 성벽 짓는 일에 몰두합니다. 전세계로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고, 하나님의 나라의 기틀을 준비하는 거룩한 작업인데, 그의 상황이 녹녹치 않습니다. 먼저는 그에게 돈과 사람이 부족했습니다. 주변 상황도 전혀 협조적이지 않습니다. 주변에 있던 다른 민족들과 거주민들은 예루살렘 성벽 건설을 전적으로 방해하는 세력이었습니다. 군사적으로 공격하려고 했고, 느헤미야에게 회의를 하자고 꾀어내어 죽이려 했고, 심지어는 느헤미야 양 옆에 있는 유대인들과 혼인등을 통해 동맹해서 느헤미야의 힘을 빼고 두려움을 주려고 했었습니다(14절). 마치 재난에 둘러싸여 아무것도 못하는 우리와 같이 답답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느헤미야는 꿋꿋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합니다. 그것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겁니다. 제2성전이라 부르는 새로운 성전을 보호하고 그것을 돌볼 예루살렘 공동체가 안착할 예루살렘 성벽을 다 완성합니다. 아무리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적고, 상황이 답답해도, 우리는 꿋꿋이 미래를 준비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는 그 반석위에 지어집니다.

2. 느헤미야는 기도하면서 주님 의지할 때, 미래를 이루어갑니다(16절).
주변 상황이 이렇게 비협조적이고 호전적이면 우리 인간은 주눅들거나 두려워하거나 근심하거나 낙담하기 쉽습니다. 외로울 수밖에 없고,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그 모든 것과 싸우기에는 너무 무기력합니다. 느헤미야도 그래서 수시로 기도합니다(14절,느5:19). 애초에 이 예루살렘 성벽을 짓는 일에 헌신하는 것도 자신의 생각과 이익을 위해서 결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성전이 황폐해지는 것이 안타까와서 눈물로 기도하면서 모든 명예와 특권을 버리고 왔던 겁니다(느1:11;2:4-5). 느헤미야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에 헌신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서, 하나님께서 마음을 다해 도와주시는 겁니다. 지금 환난의 때이지만, 우리가 올바른 일,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 의지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는 적들에게 오히려 두려움과 낙담과 파멸을 가져다줍니다.

3. 미래를 만들어가는 지금은 우리의 헌신과 노력과 함께 만들어집니다(느5:14).
예루살렘 성벽 공사는 예루살렘에 돌아온 무리들의 소원이며 가장 시급한 일이었습니다. 성벽이 없으니까 적들이 습격해서 불태우기도 하고, 도적질을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느헤미야가 바사왕국에서의 모든 특권을 희생하고, 자신의 총독으로서의 권리도 희생하고 헌신했을 때, 성벽 공사가 완공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일은 이루어주시지만, 우리 인간의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느헤미야가 무작정 성벽만 지어대는 무식한 방식이 아니라, 적들이 느헤미야를 죽이려는 악한 계획도 파악해 내면서, 주변에 있는 적들을 칼을 들고 공사는 방식으로 지혜를 다해 대비함으로써 그 일들을 이루어냅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도움이 눈에 띄게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의지하면서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미래가 만들어져 가는 겁니다.

결론 : 지금 우리가 주눅들어만 있을 수도 없고, 낙담하고만 있을수도 없습니다. 그건 어둠이 우리에게 원하는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는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능력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만든다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씩 이겨나가야 할 것입니다. 함께 하나님의 선한 일에 헌신함으로 미래를 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

0920_분노는 나의 적(약1:18-21)

벌써 2.5단계 조치가 취해진지 2주가 지나고 현장 예배를 못한지도 4주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길어지다 보니 많은 분들이 지치고 낙망하기 쉬운 때라고 생각합니다. 몸도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교회와 멀어져서 신앙도 희미해지기 쉽고요. 그러나 이런 때 우리에게 귀한 은혜가 있습니다.

1. 그건 이런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신다는 겁니다(11절).
야곱은 지금 형 에서와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해서 장자의 축복을 받아버립니다. 그 바람에 형 에서는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고 작정을 하고요. 가족이 파탄 날 것을 염려한 아버지 에서와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을 지금 하란에 있는 외삼촌 라반에게 보낸 겁니다. 광야에서 야곱은 혼자서 위험한 밤을 보내야 합니다. 돌베개를 베고. 그런데 그런 사기꾼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모든 자격 없는 사람들에게 찾아오십니다. 2천년 전에 자격 없고 죄인인 우리 모두를 위해 예수님 보내주신 것처럼. 예수님도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던 38년된 병자에게 찾아가십니다. 그가 아무 도움이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고 병을 고쳐주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의 선물입니다. 가장 힘들 때, 가장 낙망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2. 우리 인간은 광야에 혼자 나가야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10절).
야곱은 이미 하나님에 대해서 알았습니다. 아버지 이삭과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었을테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때부터 야곱을 만날 준비를 하셨고, 이미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과 함께 거할 때에 야곱은 다가와 주신 하나님을 만날 생각을 안했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고, 자기가 잘난줄 알았으니까. 또 부모님과 형과 종들도 있어서 외롭지 않아서, 하나님을 찾을 생각을 안했던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려면 광야에 나가 혼자 있어야 합니다. 모세도 미디안 광야에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났고, 엘리야도 이세벨의 위협에 광야로 도망갔을 때 영광 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남을 만나지 못할 때 바로 이때가 하나님을 만날 때입니다. 힘든 시간 하나님 도움으로 이길 수 있고, 힘든 이 시간 하나님을 바라보고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을 때만나야 축복이지 아니면 큰 손해입니다(14절).
야곱은 사기꾼 주제였지만, 지금 하나님을 만나서 광야에서부터 다시 이땅에 돌아오는 그 험난한 나날동안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로 잘 이겨냈습니다. 헤매지도 않았고, 마지막으로 형 에서와도 화해할 수 있었고요.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하나님 만남으로해서 야곱은 신분이 바뀝니다. 14절에서 축복하는 믿음의 조상이라는 타이틀에 합당한 자로 성장해 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신 이유는 단순히 위로하고 격려만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 이상입니다. 야곱에게 힘을 주고 소망을 줘서 믿음의 조상에 부끄럽지 않은 자로 성장하도록 인도하시려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찾아오신 하나님과 함께라면 이 고난을 잘 이길 뿐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일꾼으로 거듭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결론 : 고난은 하나님을 만나기 좋은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시려고 이미 작정하신 때입니다. 이런 때야말로 하나님 바라봐서 하나님을 꼭 만나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가득 채워지시길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