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9-성령을 따라(갈5:16-18)

믿는 자로서 제대로 살고 싶다면 무엇에 힘써야 할까요? 맨처음에는 예수님을 믿는게 너무 좋은데, 믿음이 커갈수록 우리는 갈등에 부딪힙니다. 나는 제대로 믿고 싶은데, 내 마음에는 의심은 자꾸 들고, 현실의 어려움과 나의 연약함을 가지고 말씀의 무게 앞에서 갈등을 겪을 때가 많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렇게 갈팡질팡하는 연약한 신앙인에 대해서 귀한 교훈을 주고 계십니다.

1. 성령님 없이는 우리는 육체의 욕심, 죄를 따라 살게 됩니다(17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영접하는 순간부터, 아니 예수님을 알고 싶어하는 순간부터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고전12:3). 문제는 믿는 자 중에서 나에게 임하신 성령님의 인도와 도움을 받고 승리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신자는 성령은 의식도 하지도 않고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성경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또 모든 교리에 정통하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선한 행위를 열심히 하고 산다고 할지라도, 성령의 도움 없이는 우리는 온전한 선을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인도와 도움 없이는 우리가 제대로 된 행위나 선을 이루지도 못하기 일수고, 실수투성이기 쉽습니다. 또는 자기 자랑이나 자기 교만에 의한 목적이 틀린 행위이기도 쉽습니다. 나는 선을 원했지만, 결국은 선을 행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릅니다(롬7:19).

2.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는 육체의 욕심이 아니라 선을 이루며 살게 됩니다(16절).
우리의 지혜나 능력, 결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반면에 성령의 음성, 인도하심에 민감하여 따라간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계획에 순종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것이 됩니다. 또하 성령을 따라가면, 성령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해서 하나의 행위라도 온전한 선을 이루어가는 수준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내 계획과 의지라면 내 의를 이루는 것에 가깝겠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면 내 의나 교만과는 전혀 상관없는 하나님의 뜻과 의를 이루게 됩니다. 성령을 따라가면 온전한 선을 이루어가게 됩니다.

3. 성령님께 순종하면 우리는 이땅에서도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18절).
만약 성령님의 도움 없이 혼자만의 지혜와 능력, 결정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떨까요? 분명히 매일 죄책감과 패배감에 시달릴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있는 양심과 율법의 지식이, 또 우리 밖에 있는 율법의 객관적인 기준이 우리를 정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노력으로는 율법의 저주 아래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갈3:10). 반면에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한 사람은 완벽하지는 않아도, 모든 것을 다 실천한 것을 아닐지라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 마음에 평안과 성령의 인정하심이 함께 합니다. 마치 다윗이 실수하고 죄를 짓는 왕이었어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했더니,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왕이 된 것처럼. 성령께 순종하는 자에게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는 자유가 있습니다(롬8:2)

결론 :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성령께 민감해야 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하는 삶, 열매맺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말씀 드는 모든 분들에게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0412-부활의 능력이 곳곳에(벧전1:3-5)

저의 작은 소망이 부활절에 우리 교인들 다 같이 모여서 부활의 기쁨을 함께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너무 서운하고 서글프네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카타콤 동굴에서 평생을 지내며 짧은 생애동안 예배에 목숨 걸었던 비장한 신앙의 선배들의 모습도 생각납니다. 이 캄캄한 동굴에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시니까요. 특별히 오늘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부활은 더더욱 우리의 캄캄한 미래에 엄청난 선물을 가져다줍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은 허무한 우리 인생에 가치있고 영원한 열매를 선사합니다(4절).
인간의 모든 것은 허무합니다. 그것이 죽음으로 끝이 나면 다 신기루와 같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살아생전에 누렸던 권력도, 부귀도, 쾌락도, 유명세도 죽음과 함께 다 소용없어집니다. 살아서 열심히 공든 탑을 쌓으려 해도 다 부질없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 그런 허무함은 이제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사라집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수고하는 모든 것이 우리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기록될 것이고, 영원한 영혼의 열매를 맺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우리 모두에게 생명과 천국을 선사한 것처럼. 우리의 삶도 이 영광스러운 영원한 생명의 역사의 일부가 되어갈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헛된 것에 우리 인생을 덜 허비하고, 예수님의 길을 조금이라도 따라간다면 말입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소망과 능력의 보호를 허락합니다(3,5절).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의 허무함과 세상의 무게에 눌린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피부로 느낄 정도로 생생하게 알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과 희생이 그저 상상속의 일이라면, 또 믿는 자들이 아무런 도움 없이 그저 막연한 천국의 선물만 바라보고 눈앞의 장애를 맨발과 맨손으로 긁으면서 나가야 했다면 얼마나 힘들고 비참할까요?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우리에게 성령의 임재가 기다립니다. 그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포근한 안식과 샘솟는 기쁨과 열정적인 능력과 위로로 함께 하십니다. 내 안에 내가 아닌 거룩한 영의 능력이 함께 합니다. 그것을 경험하는 자는 아무리 힘든 난관을 만날지라도 그것을 이길 소망도 생기고요.

3.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은 믿음으로 받습니다(5절).
이렇게 실제적인 능력과 보호와 진리가 함께 하는 예수님의 부활의 실재가 왜 우리들에게는 안느껴질까요? 그건 그 사람의 믿음의 차이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께서 해 주신 일을 믿고 의지하기에 예수님의 부활이 선사하시는 능력과 성령의 역사를 알고 소망하며 받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대하지도 않고 소망하지도 않고 찾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찾을 수도 받을 수도 받아 누릴 수도 없는 겁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부활의 능력이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려면 먼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을 뿐 아니라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최소한 알기를 소망하고 믿기를 소망하며 깨닫기를 갈망해야 하는 겁니다.

결론 : 예수님 부활의 능력은 우주를 변화시키고 우리 삶을 변화시킵니다. 아무리 어두컴컴한 세상일지라도 그곳에 부활 때문에 소망과 위로와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 승리(삿6:12-14)

힘든 일이 지속되면 사람들이 흔히 선택하는 옵션은 포기입니다. 포기하고 특별히 그것을 이기려는 노력이나 용기나 열정을 가지지 않고 체념하고서 그 상황에 묻혀 삽니다. 그러다보면 특별한 꿈을 꾸지 않고 삶에 특별한 의미도, 목적도 가지지 않고 세상 따라 흘러가는 겁니다. 지금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면서 혹시 우리가 그런 포기 상태에 들어가는 건 아닌지 점검해봐야 할 것입니다. 대신 오늘 기드온처럼만 행동해도 놀라운 가능성이 열립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때가 되면 우리게 승리를 허락하십니다(12절).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의 약탈을 두려워해서 포도틀 안에서 타작을 하던 겁쟁이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그렇게 무기력할 때, 하나님의 사자가 기도온에게 갑자기 나타나십니다. 하나님 함께 하신다면서. 주변 상황은 하나님께서 안계신 것 같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시거나 잊으신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나 기드온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타나셔서 놀라운 승리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역사를 이루시면서 승리를 이루십니다(14절).

오늘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나타나셔서 민족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기드온에게 오히려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아무 능력도 없고, 겁쟁이처럼 숨어서 타작하던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는 승리의 일꾼이 되라고 요구하시는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무 능력도 없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을 하나님의 승리의 역사에 주인공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서 모든 일을 이루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천지창조의 유지도, 출애굽의 역사도, 심지어는 구원의 역사도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능력도 모세와 같이 순종하는 인간을 통해서 나타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우리가 바로 그런 통로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고 기대하고 의지하는 자를 통하여 일하십니다(13절).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무능력하고 겁이 많은 기드온을 찾아오셔서 이 거대한 일을 이루려고 하셨을까요? 이미 용사로 무장된 사람을 쓰시면 더 편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 기드온처럼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 함께 하시는 이길 수 있다는 기대와 소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기드온은 그 험악한 시기에도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함께 하시다고 인사하는 하나님의 사자에게 감히 말대꾸하면서 하나님 함께 하시는데 왜 이런 재앙이 닥치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 함께 하시는 것에 대한 기준과 소망이 있었던 거죠. 그런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나타나주시고 함께 하신다 약속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신앙과 경험이 쌓여 가면서 용사로 변화되어 갑니다. 조그만 승리가 용사를 만드는 겁니다. 또한 시대의 필요가 사명과 소망을 낳는 겁니다.

결론 : 우리 하나님은 지금 바이러스 사태에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런 험악한 시기에도 하나님을 기대하고 의지하는 자를 통해서 일을 이루시고 승리를 이루십니다. 그런 기대로 하나님의 부름과 쓰임 받으면서 시대와 환난을 이기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기도합니다.

0329-예수님의 사랑 때문에(마9:35-36)

우리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같은 바이러스 사태와 같은 외부적인 환란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받는 상처나 배신이 큽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점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어려움을 당한 분들은 하나님께도 똑같은 자세를 지니게 된다는 겁니다. 특별히 그 상처가 부모님에게 받은 거라면, 고스란히 하나님께 투영이 됩니다. 그런 분들일수록 이런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더 마음에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런 의구심이 조금이라도 사라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36절).

사람이 타인 때문에 상처받고 어려워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상대방에게서 사랑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풍부한 부모님에게서 자란 사람은 아무리 가난해도, 힘든 환경에서 자라났어도, 최소한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없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확신하기에, 다른 어려움이나 꾸지람도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가슴에 느끼고 있다면, 아무리 힘든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이 잘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나님 원망하거나 힘든 환경에 좌절해 버리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느냐 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예수님이라는 말은 많이 하지만, 정작 예수님의 사랑을 잘 느껴보지 못하고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해서 항상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잘 못느끼는 분들은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을 자세히 바라보세요. 마지막 피한방울까지 그 죄 없는 예수님께서 도대체 누구를 위해 흘리셨는지 묵상해 보세요.

  1. 예수님의 사랑은 진리와 함께 합니다(35절).

예수님의 사랑이 더 감사하고 더 은혜로운 것은 그 사랑이 우리의 연약함을 덮고도 남음이 있으면서도,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들을 그냥 고치시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먼저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복음으로 공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달래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의 근원인 죄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죄의 자리에서 떠나서 생명의 길, 진리의 길로 걸어오도록 모든 저항과 오해를 무릅쓰고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사랑의 진리가 함께 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행적을 보는 사람들은 감동하면서 온 몸과 마음을 바쳐 따르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사랑은 능력도 함께 합니다.(35절).

만약 예수님의 사랑이 어느 돈 없고 가난하고 힘없고 약한 부모님의 사랑과 같이 우리를 보호해 주지 못하는 것이라면, 남들에게 함부로 권유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의 사랑은 병자를 고치고, 죄인의 마음을 바꾸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의 사랑입니다. 또한 죄 때문에 죽어가야 할 모든 자들을 죽음에서 해방시키시는 전 우주적인 능력의, 진리의 사랑입니다. 이 어두운 때에도 그 예수님의 생명의 빛이 함께 있어서 우리가 어둠에 파묻히지 않을 수가 있는 겁니다.

결론 : 우리 예수님의 사랑은 진짜이며, 파워풀합니다. 그 사랑이 있기 때문에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지금 좌절하지 않게 됩니다. 천국에 대해서 확신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 받아서 어둠을 이기시길 축복드립니다.

0322-어둠 대신 빛을(출15:23-26)

다음주에 개학을 하면 본격적으로 예배를 다시 시작하려던 작은 소망이 무너졌습니다. 제 작은 소망처럼 되지 않았다고 해서 절망하거나 낙심할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영상으로, 또는 소수가 모여서 예배는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그 무게를 이겨낼 수 있을지 말씀을 통해서 같이 은혜를 나누길 바랍니다.

  1. 현실의 어려움은 우리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더 힘들어집니다(24절).

오늘 히브리 사람들은 출애굽해서 미디안 땅에 들어서자마자 물을 사흘 동안 구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만납니다(22절). 광야에서 물조차 없으니 더 힘들었을 것은 다 이해가 됩니다. 문제는 그 상황 가운데 히브리 사람들은 불평과 원망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은 자기 마음도 아프게 만들고, 공동체를 깨뜨리며, 사재기와 같은 공황상태를 낳기만 합니다. 더군다나 그들을 애굽 종살이에서 빼내고 홍해를 갈라 이곳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의 말씀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26절). 한마디로 상황을 낫게 만들지 못하고 더 어렵게 만들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한국사람들은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외국의 유명한 선진국 시민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 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려움을 쉽게 이겨내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짜증낼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가장 밝은 것, 소망이나 교훈, 나아질 점을 선택해서 얻어가는 것이 더 지혜롭습니다.

  1. 환란에 자꾸 어둠을 선택하는 이유는 신앙과 감사가 없어서입니다(25,27절).

히브리 사람들이 물이 없을 때 모세를 원망하며 불평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 하나님께서는 반나절만(11km) 가면 물이 가득한 엘림이라는 풍요로운 오아시스를 만나게 되어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친절과 기적과 사랑을 전혀 기억하고 있었다면 그들은 불평과 원망이라는 어둠이 아니라,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애굽의 10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이정도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자기 기분 좋을 때는 찬양하지만, 조금만 불편하고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장 불평하고 원망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전혀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람의 모습을 히브리인들은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음에 신뢰가 있다면, 감사가 있다면 이렇게 부정적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1. 이해하기 어려워도 지금까지 은혜, 진리의 말씀 의지해서 빛을 선택합시다(26절)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생명, 영생, 은혜, 건강, 사랑, 축복등을 기억한다면, 지금의 아픔과 어려움을 조금만 더 참고 믿음으로 승리하려고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엘림과 같은 하나님의 뜻이나 계획을 다 알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혜를 신뢰해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또, 지금의 고난이 우리의 죄악 때문인지도 모르고, 우리의 기도 부족 때문인지도 모르니까, 열심히 나와 우리 공동체의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엘림에, 가나안 땅에, 영생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결론 : 요즘에는 제가 한국인이고 한국 땅에 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조금 나아졌다고 게을러질 것이 아니라, 더 열심히 회개하며 말씀 붙잡고 소망 가운데에서 이 고난을 같이 이겨나가려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