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급변해서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가장 보수적인 우리 기독교 신앙의 삶은 어떨까요? 우리 교회는 원래 보수적입니다. 왜냐하면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는 하나님, 말씀, 진리, 사랑과 같은 근본적인 가르침을 고수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외의 것들, 우리의 모든 것, 세상, 가치관, 습관 모두는 변해야 한다는 것이 원래 성경적인 가르칩니다.

1. 모든 사람들에게는 오는 것은 허락되었으나, 그 다음에는 변해야 삽니다(7절).
오늘 말씀은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며 회개를 선포하는 자리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오는 장면입니다. 그들도 하나님께 오는 것은 허락되어 있습니다. 오는데에는 아무런 전제 조건이 없습니다. 마치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허락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딤전2:4;딛2:11). 그 부류에는 죄인도 있고 동성애자도 있고, 간음한 사람도 있고, 술과 담배를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죄 씻음을 받으려고 올 수 있었던 겁니다. 문제는 세례 받으러 왔으나, 그들이 아직 세례 받고 용서함을 온전히 받아 누리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불릴만큼, 속에 잘못된 생각과 태도, 목적과 동기가 가득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세례를 베푼다고 하니까 오긴 왔는데, 잔치 자리에 와서 뭔가 얻어 먹을 생각만 했지, 사실 자신의 잘못이나 죄악은 고칠 생각이 티끌만큼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로 은혜로 왔으면 그 은혜에 합당하지 않은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아니면 허락되어 있는 은혜를 제대로 받아 누릴 수 없고, 영적인 열매 맺을 수가 없습니다.

2. 구원은 은혜이지만 영적 열매는 우리가 변해야 받아 거둘 수 있습니다(8절).
오늘 세례요한에게 왔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세례라는 은혜는 받으려고 왔지만 그들의 마음과 삶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예수님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었습니다. 은혜의 초대는 받았지만, 정작 생명의 은혜는 누리지 못하고 열매 맺지 못하는 겁니다.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때문에 우리와 같이 모자란 사람들도 지금 이 자리에 와서 은혜의 복음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세계는 구원 이후 더 넓고 깊습니다. 그 은혜의 세계에 나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인 열매, 구원 받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과수원을 하려면 나무를 심고 나무를 돌보고 열매를 보살펴야 과실을 거둘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삶에서 영적인 열매를 맺으려면 밭을 일구고 나무를 심고, 가꿔야 합니다. 내가 영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회심하고,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야 영적인 열매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내 생각, 내 습관, 내 삶의 목적, 내 마음 자세 모든 것이 다 바뀌지 않으면, 삶의 회심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만큼 영적 열매는 늦어지거나 작아집니다. 마음으로만 회개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 즉 삶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영적인 열매를 맺으려면 내 모든 것을 바꾸시길 바랍니다.

3. 다행인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는 나의 변화를 기다려 주고 계십니다(10절).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 있단 말은 지금 추수의 때, 심판의 때가 가까웠다는 말씀입니다. 다행인 것은 그게 아직 안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회심을, 삶의 변화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려 주셨기에, 저와 같은 자도 구원을 받아 은혜의 삶을, 열매 맺으려 하는 삶을 살아갈 기회를 가지는 것이고요.

결론 : 오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경고의 말씀이요, 격려의 말씀입니다. 아직도 안 바뀌셨습니까? 아직도 세상이 좋으십니까? 영적 열매를 위해, 심판 때 하나님의 칭찬을 위해, 오늘 자기 스스로를 영적인 사람으로 바꾸어 가시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카테고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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