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은 복을 받기를 좋아합니다. 이는 우리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가 너무 복 받기 좋아해서 기복 종교 아니냐고 비난받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축복을 받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복은 그냥 우리 자신에게만 도움이 되는 복이 결코 아닙니다. 그 복은 하나님의 성품 중에 하나인 정의, 공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허락되는 축복입니다.

1. 하나님의 종은 자기 이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추구합니다(1절).
오늘 말씀에 하나님의 종이 나옵니다. 그 종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하나님의 택정함을 입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향한 예언에 해당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그 하나님의 종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정의입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정의를 행하고 연약한 자들을 보호하는데,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자기의 이익을 욕심내지 않고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의 복과 이 생에서의 형통함을 경험하는 약속을 받지만, 이는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의 길, 예수님의 길을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같이 걸어간다는 전제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내 욕심만 내고, 내 이익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눅9:62).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우리 예수님부터 먼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모든 특권을 버리고, 하나님의 공의 즉 모든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빌2:7-8).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원하는 우리도 자기 유익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 이웃을 돌보는 삶을 따라가야할 것입니다(빌2:4).

2.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진리와 공의가 충만해지기를 원하십니다(3절).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히 우리가 죽은 다음에 가는 저 세상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정의롭고 진리가 충만한 세상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셔서 거짓이 없고 불의도 없고 고통도 없고 갈등도 없는 아름다운 세상. 하나님께서는 창조 때부터 이 땅에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원하셨었습니다. 하나님 계신 곳에는 정의와 공의가 충만해집니다(시33: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면서 연약한 가난한 자들, 과부, 고아, 나그네를 돌보라고 신신당부하십다(신14:29,15:11).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벌하시는 이유도 그들의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떠났을 뿐 아니라(사29:13), 하나님의 당부인 가난한 자들, 고아, 과부와 나그네를 괴롭혔기 때문입니다(사1:17,23).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뿐 아니라, 그것의 실천으로 가난한 자, 연약한 자를 돌보는 정의를 실천해야 합니다(약1:27).

3. 하나님의 보호와 공급하심은 정의를 실천하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4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정의를 실행에 옮기는 하나님의 종을 기뻐하고 택하시고 영을 부어주십니다. 그는 그런 능력과 도움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애쓰되, 쇠하지 않고 낙담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충만함과 능력과 도움을 주시는 자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뜻인 정의를 실현하려고 작정하고 노력하는 자들입니다. 자기 유익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그런 은혜가 제대로 깨달아지지도 못하고 미치지도 못합니다. 예수님의 계명인 사랑을 지키는 자라야 예수님의 품 안에 거하면서(요14:21) 예수님의 생명의 은혜와 능력을 받게 됩니다(요.15:7) 고아, 과부, 객을 배부르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범사에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지신 정의는 맨처음 아무것도 없는 우리에게 임해서 하나님의 종으로 삼으시고, 살아나고 회복된 우리를 통해 그 사랑과 정의를 이웃에게 전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 이 땅에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표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공급하심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정의를 사모하며 이루어가기길 바랍니다.

카테고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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