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없이 얻는 것도 없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나 우리 사랑하는 자녀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으면 너무 좋겠지만, 인생이, 세상이 그리 녹록치 않아서 고생 없이는, 노력하지 않고서는 귀한 것을 얻지를 못합니다. 똑같이 고생해야 한다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위해서, 좀더 나은 열매를 위해 애쓰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죠.

1. 고생 중에도 거룩하고 보람되고 더 가치있는 고생이 있습니다(5절).
인생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이 우리의 실수로, 우리의 잘못된 선택으로 쓸데없이 고생하는 것입니다. 투자를 잘못해서, 못된 사람 못 알아보고 만나서, 그리고 아무런 소득 없이 쓸데없이 시간과 자원과 열정을 낭비한 경우가 이 세상에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허무한 인생 가운데에서도 가치 있는 고생이 있습니다. 바로 생명을 살리는 고생입니다. 우리 일상에서는 아이를 낳는 고생은 평생 뿐 아니라 내 핏줄이 이어지는 한 가치 있는 고생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을 위한 고난과 희생은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한 희생입니다. 더군다나 우리 예수님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선물하시기 위해서 자기를 죽음 가운데 던져 넣는 희생은 고귀하고 가치 있으며 거룩한 희생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2. 거룩한 희생은 자신을 위할 때가 아니라 타인의 생명을 위할 때 가능합니다(6절).
오늘 바울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영혼들을 위해서 고생하고 희생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본능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영적으로 아직도 어리고 무지하다는 표시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려는 어둠의 계략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고, 혼자만을 위해 살라고 지음 받은 존재도 아닙니다. 우리 혼자만을 위해서 살라고 지음 받은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나라는 경계를 넘어서 이 땅 가운데, 내 주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고 부름 받은 존재입니다. 나 때문에 내 배우자와 내 자녀들이 살게 되라고, 나 때문에 내 공동체가 살고 이 나라가 살기 위해서 지음 받았고 부름 받은 존재입니다. 나만을 위해 산다면, 우리는 우리 삶의 목적과 의미를 전혀 이루지 못하고 살아가는 겁니다. 바울이 이방인에게 선교하지 않았다면 그는 삶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낳지 않았다면, 우리 삶의 가치가 너무 작아지고, 의미도 축소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섬기고 위해서 고생하는 자들의 반경만큼 삶의 반경도 가치도 넓어지는 겁니다.

3. 우리가 거룩한 희생을 택할 때 거룩한 위로가 하늘로부터 임합니다(6절).
우리가 남을 위해서 희생만 하고 살라면 그것도 참으로 참기 힘든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를 낳는 고통과 키우는 고생만 있다면 우리는 자녀를 낳기 힘들겠지만, 자녀를 출생하고 키우는데 고생만 있는게 아닙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이 있기 때문에, 고생을 감수하는 겁니다. 우리가 타인을 위한 거룩한 희생을 선택할 때는 우리 삶의 목적과 사명을 이룰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하늘로부터 임하는 위로가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의 위로 뿐 아니라, 나 때문에 살아나는 사람들의 회복과 기쁨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나만을 위해 살라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 백성이 되어야할 우리의 이웃을 위한 아름답고 가치 있는 거룩한 희생을 우리 모두 감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목적을 이루는 길이요, 그것이 우리의 허무한 삶 가운데 보람을 누리면서 가치 있어지는 길입니다.

카테고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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