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다니면서도 아직도 세상적인 모습이 우리 가운데 많습니다. 분노도 있고 좌절과 낙망도 있고, 사람들과의 갈등도 지속되고. 어떻게 예수님 믿으면서, 천국을 소망하면서도 이런 세상적인 모습이 우리 가운데 아직도 가득 있을까요? 도대체 무슨 연유에서 그런 상황들이 펼쳐지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지혜를 얻기를 소망합니다.

1. 예수님 믿으면서도 세상적인 모습이 많은 사람은 육이 강한 사람입니다(1절).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아직도 세상적이고 육적인 모습이 많은 사람들을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아직 육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니, 성령의 임재는 하나도 없는 세상적인 사람, 육적인 사람,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겁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예수님에게 속한 고린도교인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설교말씀을 듣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했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자들은 아닙니다. 영생을 얻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합니다. 자신의 죄도 회개했겠죠. 그러나 아직도 육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그들은 아직도 영적으로 약하고 육적으로 강한 어린 아이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아직 신령한 영적 세계에 대해서 모르고, 영적 교훈도 잘 적용하지 못합니다. 대신 아직도 시기와 분쟁이 자주 일어나고, 세상적인 욕심이 가득차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 세상의 자랑을 따르고 있다면 나는 아직 육이 강한 사람입니다(요일2:16).

2. 예수님 믿으나 육이 강한 사람에게는 육의 부정적인 열매가 나타납니다(3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롬8:6), 육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육적인 열매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고린도 교인들의 시기와 분쟁이 그 중에 하나입니다. 마음에 불평과 불안이 넘쳐서 분노가 자주 나타납니다. 쉽게 낙담합니다. 영생을 사모하고, 예수님 영접해서 천국 백성 되었다고 고백은 하지만, 아직도 세상의 화려함에 눈이 자주 갑니다. 그것도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세상의 돈과 명예와 성공입니다. 대신 그만큼 영적인 평안과 기쁨은 작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것을 중시하다보니까, 내 손에 쥐어진 것이 없으면, 나의 세상적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낙담하고 실망하니까요. 그들의 겉모습은 세상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영적인 존재이어야 하지만, 아직 영적으로 무지하고 말씀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말씀이 달콤하고 기쁘게 들리지 않습니다. 혹시 내 삶에 낙담과 분노와 시기심과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많거나, 내 주변에 영적인 평안이나 기쁨이나 생명의 열매가 없으면 나는 아직 육이 강한 그리스도인인 셈입니다.

3. 강한 육의 성향은 죽여야, 우리가 영적인 축복과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2절).
말씀도 있는 그대로 읽고 깨닫고 기쁨으로 감사할 줄 모르고, 겨우 설교 말씀 조금 듣고 은혜 조금 받고 있다면, 우리에게 영적 공급, 양식이 너무 적은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삶 가운데 영적인 열매, 생명의 열매가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육신은 죽이고, 성령의 은혜와 능력으로 채워져야 하는 것입니다(롬8:13). 내 육의 욕망을 버리면 버릴수록 그 자리에 성령의 평안과 기쁨과 소망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또, 세상 것들의 허망함과 가치 없음을 말씀으로, 경험으로 깨닫고, 세상 것에 대한 애착을 자꾸 버려야 합니다. 대신 영생의 소망,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생명의 말씀을 가까이 할수록 우리 안에 영적 생명, 능력, 지혜가 더 채워질 것입니다. 우리가 풍성한 영적 열매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은 육이 강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영적인 사람입니까? 여러분의 삶에 영적 열매가 별로 없다면, 대신 육신의 부정적인 열매가 많다면, 기도와 말씀 안에서 자꾸 육신은 죽이고, 성령으로 충만해 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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