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난주에는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눴습니다. 전능하신 엘 샤다이 하나님이 계시다면 지금 우리가 이런 코로나 사태를 두려워할 이유도 없고, 그것 때문에 경기가 나빠지고 상황이 힘들다고 낙담하거나 미래를 암울하게 볼 필요도 없음을 나눴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우리와 같이 부족하고 연약한 자를 도와주실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또 보호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지만, 우리와 같이 죄악되고 또 배은망덕한, 더러운 자들을 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사랑해주시고 전능하신 권세로 보호하신다고 확신할 수 있나요? 그건 하나님의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의 문제입니다.

1. 아직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건 내가 종의 영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15절).
우리가 예전에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모를 때 우리는 사탄 마귀의 영향력 하에 있는 종의 영을 받아 죄의 종, 사탄 마귀의 노예였었습니다. 그래서 죄성이 시키는대로, 세상에서 조종하고 세뇌시킨 대로 물질에 매여서, 세상 가치관에 매여서 몇십년이고 살아왔었습니다. 비록 지금 교회 나오고 말씀을 들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는 듣고 배웠지만, 아직은 그런 축복된 자격과 위치는 익숙하지 않은 겁니다. 오히려 아직도 종의 영의 지배를 받아 죄가운데, 쾌락 가운데, 세상 영향력 가운데 살던 때와 같이 지금도 세상의 영향과 세상 습관, 죄성의 이끌림에 끌려다니는 것이 더 익숙하고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그 결과가 바로 두려움이며 불안함입니다. 하나님의 양자는 되었는데, 그 사실을 못 믿고 언제든지 죄의 노예로 탈바꿈할까봐 두려운 것이고 아직도 하나님의 양자가 된 사실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양자로서 어떤 권세와 축복을 받는지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2. 성령과 또 은혜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됨을 기억해야합니다(16절).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양자된 것을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사실 오랜만에 이렇게 함께 모여 예배하는데, 이렇게 예배의 자리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셔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14절). 거기다, 수시로 말씀이 들리고 깨달아지고, 기도하면 응답을 받고, 또 지금과 같이 낙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소망이 있고 위로가 있다면, 그건 우리 안에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고 계시다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성령님의 운행하심과 교회와 교인을 통한 사랑의 섬김 등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과 자녀로서의 축복을 배우고 깨닫고 누릴 수 있게 됩니다.

3. 성령과 동행에서 나온 친밀함이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알게 해줍니다(17절).
처음 양자된 사람이 부모님을 부모라 부르기도 익숙치 않지만, 부모님의 사랑과 배려로 익숙해지면서 그런 거리감과 어색함이 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처음 하나님의 양자된 사람이 성령의 역사와 말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된 사실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함께 함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의 존재가, 전능하심이 낯설거나 멀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바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과 헌신으로 직접 보여주신 바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해야할 것은 지속적으로 성령과 동행함으로 하나님과 친밀해 지는 것입니다.

결론 : 지금 행복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이시고, 그분과 성령의 역사하심과 은혜로 친밀해진다면, 이런 상황 속에서도 기뻐하며 평안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되길 소원합니다.

카테고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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