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가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양심에 고장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리도 뻔뻔하게 반응할 수 있는지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양심이 없는 걸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양심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1. 양심은 우리를 선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안내자입니다(14절).
오늘 로마서 말씀은 율법 없는 이방인들이 어떻게 율법 없이 율법이 요구하는 선을 이루어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대해서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이방인들에게 율법이 없어도, 그들 안에 있는 양심이 스스로에게 길잡이가 되어서 율법의 행위를 할 수 있게 해 주신다는 겁니다. 이처럼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모두에게 양심이라는 안내자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선한 길, 즉 율법을 준수하는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우리 마음속에 마련해 놓으신 좋은 안내자입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드는 이 양심을 자신을 억누르는 억압자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불우하고 억압된 어린 시절에 폭력을 행하는 어른들의 강요하는 모습으로 인해 왜곡되고 비뚤어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양심을 지적한 것이지 제대로 작동하는 양심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은 우리를 억압하는 독재자가 아니라, 우리를 잘못된 길로 가지 말라고 경고해서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는 선한 인도자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마치 요즘 자동차에서 충돌방지 자동시스템이 작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잘못된 길로 가면 경고하고, 올바른 길로 가면 응원하고 위로하는 작동 말입니다.

2. 이 양심은 우리를 고발하거나 변호하는데, 고장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15절).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이 양심이 기준이 되어서 살아가지만,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설 때 그 양심이 심판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그 양심은 지금 현생이나 나중에 심판 때 우리가 잘못가거나 불의한 일을 할 때 우리를 고발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합니다. 또는 우리의 본심이나 의도가 잘못된 것이 아님을 증언해주고 변호해 주기도 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양심이 제대로 살아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반면에, 우리의 죄된 습관과 환경 때문에 그 양심이 비뚤어지고 고장나기 일수입니다. 아까 말한 양심에 털이 난 사람들, 또는 사이코들이라 불리는 독특한 사람들은 이 양심이 변호만 하지 잘못된 길에 대한 경고를 하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정당화 시키는 일만 하는 겁니다. 반면에 프로이드 경우 양심이 지나치게 억압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해서 프로이드를 옥죄는 장본인이 됩니다. 이처럼 양심에 고장이 나면 우리를 끊임없이 고발만 합니다. 우리가 죽을 죄인인 것처럼 정죄하고 우리가 살 가치가 없거나 너무 죄인이어서 제대로 얼굴도 들지 못할 사람으로 고소 고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모두 양심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겁니다.

3. 이땅에서 고장난 양심은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질 때 고쳐져 갑니다(딤전1:5).
고장난 양심은 우리를 괴롭힙니다. 마치 우리를 고치는 백혈구가 고장나면 우리 몸과 건강한 세포를 공격해서 백혈병이 되는 것처럼, 지나치게 예민한 양심은 우리를 숨도 쉬지 못하게 하고, 화인 맞은 양심은 잘못을 범하고도 미안해하지도 않고 자신의 변명만 늘어놓게 됩니다. 그런 고장난 양심은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만나야 합니다. 가장 진리이시고 가장 순수하신 우리 예수님의 사랑을 만나면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구별하게 됩니다. 고장난 양심도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으면서 깨끗하게 변해가기 시작합니다. 그 작업은 죽는 날까지 지속되어야 하지만 말입니다. 그 보혈을 거친 사람이어야 양심의 부작용 없이 올바른 인도함만 받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결론 : 여러분의 양심은 잘 있습니까? 혹시 너무 자기 변호만 하지 않는지? 혹시 너무 고소고발해서 숨쉬지 못하게 하는지? 보혈로 온전해지는 여러분의 양심이 되길 축복합니다.

카테고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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