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_작은 것의 소중함(눅13:18-21)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하더라고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라던데, 소소한 곳에서,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을 추구하는 겁니다. 이는 복음적인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면 작은 것이라도 발견하고 기뻐하는 태도와 유사하니까요. 오늘 말씀도 그런 삶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천국은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 시작됩니다(19절).
사람들은 천국을 생각할 때, 멀리 있고 현실에서는 접근이 불가능하고 거대한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지만, 천국은 사실 겨자씨나 누룩과 같은 작고 연약한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즉 하루 하루 한번의 좋은 생각, 한번의 선한 결정과 같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무슨 혁명이나 온 나라의 변혁과 같은 거창한 것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개혁을 제도나 법률을 고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려는 모든 인간적인 접근 방식은 시작부터 오류가 있습니다. 그 제도를 운영하고 법률을 고쳐나가는 사람들이 달라지지 않으면 세상이 바뀔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제도나 법률이 아니라 오늘 내 안에서 하나의 생각, 하나의 실천으로부터 시작되어, 나무를 이루고, 서말의 가루를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바꿔 버립니다. 실제로 천국에 있는 것과 같은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큰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면,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천국을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천국은 누룩과 겨자씨와 같이 작은 것에 기뻐하고 감사할 때 지속적으로 행복하고 기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코로나 사태 가운데에서도 소확행할 수 있는 겁니다.

2.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안다면 내적 가치의 중요성을 알게 됩니다(18절).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안다는 것은 그냥 눈높이를 낮춰서 있는 것에 만족한다는 자위적인 측면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소확행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작은 것을 선한 계획과 의미와 포텐셜을 담아서 주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네게 주신 작은 것에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과 사랑과 뜻이 담겨있으며, 나를 미래의 귀한 사역과 성장으로 인도하는 징검다리라는 사실을 알고 인정하며 감사해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지금 내게 세상 눈에는 이처럼 하찮고 작은 것을 주셨을까요? 그 안에 천국의 비밀과 현재에 주신 은혜를 감사해 하는 태도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지금 나에게 이런 힘든 상황을 주셨을까요? 그 상황을 주님의 도움으로 이겨내면서 나는 내 죄성과 교만함을 버릴 기회를 가지는 것이고, 그것이 내가 영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성숙해지면서 주님의 귀한 일꾼, 축복의 통로로 변해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주신 작은 것이 천국의 열쇠일 뿐 아니라, 내 성장을 위한 귀한 계기가 됩니다.

3. 작은 것을 놓치는 사람은 큰 것을 준비하지 못합니다(21절).
서말이나 되는 많은 밀가루를 가진 사람이 좋은 빵을 만들려면 누룩이 꼭 필요합니다. 누룩을 놓치면 더 풍성하고 더 맛좋은 빵을 구경할 수가 없습니다. 누룩이 좋은 빵에 필수적이듯이, 작은 것들 즉 디테일이 큰 일 일수록 더더욱 중요해 집니다. 1986년에 발사한지 73초만에 폭발했던 챌린저호는 오링이라는 작은 고무패킹에서 기체가 새어나와 폭발했었다고 합니다. 아주 작은 것을 놓치면서 더 큰 것을 못이룹니다. 얼마전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떴는데, 그에 대한 평가중에서 핸드폰 화형식이 등장하더라고요. 잔고장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던 삼성핸드폰이 그 화형식 다음에 잔고장을 적으로 여기고, 디테일에 힘을 쏟은 결과 현재 전세계 손꼽히는 핸드폰회사가 되었다고요. 큰 삼성핸드폰은 작은 디테일에 충실할 때 시작되었던 겁니다. 지금 내 가진 것이 작은 것에 한탄하지 말고, 그것에 최선을 다해서 작은 디테일이 완성되면서 큰 그림도 그려지는 성장이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지금 우리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더 잘 느낄 수 있을 때입니다. 작은 것의 소중함과 의미를 깨닫고, 지금 주어진 것에 담겨 있는 사명을 완수해 나가는 우리 되길 바랍니다.

글쓴이 susueoul,

1115_감사를 연습합시다(살전5:16-18)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참으로 초라하고 암울하고 비참한 시절인데, 우리가 감사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그렇지만, 영적으로 바라보면, 또 상황은 달라집니다. 우리가 받은 것과 누리고 있는 것이 우리가 느끼는 상황보다 훨씬 많습니다. 영생이나 평안이나 은혜나 보호 같은 것들이 지금 호흡하면서 여기 앉아 있는 우리에게 모두 함께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말씀처럼 해야 합니다. 바로 감사를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1. 감사는 상황이 되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16절).
오늘 주시는 말씀에서는 감사를 느끼라거나 감사하지 않냐고 하지 않습니다. 감사할 조건이 되니까, 또는 감사의 마음이 저절로 드니까 감사하라고 하지 않고, 감사를 의지적으로 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오늘 말씀에서는 기뻐하는 것도 기뻐할만하니까 기뻐하라는 것이 아니고, 의지적으로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까요?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기쁨이나 감사와 같은 감정이 단지 우리 감정이나 상황에 매여 있지 않다는 겁니다. 우리는 세상이나 상황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 너머에 있는 천국 백성이요, 영적인 사람들입니다. 바울사도는 그래서 의지적으로 감사와 기쁨을 선택하라고 명령하는 겁니다.

2. 감사와 기쁨은 선택에 의해서 할 수 있습니다(빌4:11).
기쁨과 감정은 우리가 바라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에 따라서 달라지는 선택의 결과라는 겁니다. 한마디로 감사할 만한 것을 찾고 바라보니까, 감사가 되는 것이고, 기쁨이 될만한 것을 바라보고 묵상하니까 기뻐할 수 있는 겁니다. 지금도 수많은 분들이 답답한 현실과 뉴스에만 매여있지 않고 의지적으로 자꾸 좋은 것, 기분전환 되는 것, 위로가 되는 것을 선택하실 겁니다. 그리고 잠시나마 위로 받으실 겁니다. 오늘 말씀은 그렇게 잠시 기분 전환 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만 의지해서 잠시만 위로 받지 말고, 영원히 있을, 흔들리지 않을, 그래서 우리를 지속적으로 기뻐하고 감사하게 만드는 것들을 바라보라는 명령이자 조언입니다. 자꾸 안되는 것, 없는 것, 우울한 거 바라보면서 어둠 속에 끌려 들어가지 말고, 의지적으로 영원히 좋은 것, 소망 주는 것, 지속적으로 위로가 되는 것들을 찾아보고 묵상하고 그것에 대해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실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천국이 있습니다. 영원한 영혼의 기쁨과 흔들리지 않는, 성령께서 도와주시는 평안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유롭고 죄에서 해방된 기쁨이 있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주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바라보면 우리 영혼이 아무리 힘들고 암울한 상황에 있을지라도 기뻐할 수 있는 겁니다. 그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것들과 감사한 것들을 의지적으로 바라보고 묵상해서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오늘 말씀입니다.

3. 감사는 축복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에 의지적으로 연습해야 합니다(18절).
우리가 의지적으로 감사한 것, 기쁜 것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면, 감사하게 되고 기뻐하게 되는 것처럼, 감사는 축복을 여는 열쇠입니다. 힘든 와중에도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감사를 받아서 내 생각과 마음을 지켜 주십니다(빌4:7). 배은망덕한 자의 부탁은 안들어줘도, 은혜를 알고 감사하다고 하는 사람의 부탁은 더 들어주고 싶은 법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또 감사를 하려고 노력하다보면, 그런 태도가 하나님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나타납니다. 그런 태도는 사람들의 호의와 긍정적인 반응을 부르는 열쇠입니다. 감사와 기쁨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인정하는 행위로, 그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의 존재 목적을 실현하는 행위입니다.

결론 : 감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내 눈을 어두운 곳, 이 땅만 쳐다보고 있다는 겁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시며, 주신 은혜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비록 상황은 암울해도 우리 마음에 감사와 기쁨이 생겨나고, 또 생겨날 것입니다.

글쓴이 susueoul,

1108_어른이 됩시다(엡4:13-16)

시대가 바뀌어서 요즘 자꾸 사람들이 젊어집니다. 겉 모습만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 연령이나 말과 행동도 다 젊어지다 못해 어려지고 있습니다. 연세 드신 중년들도 예전의 청년이나 젊은 장년들처럼 보이고, 청년들은 예전의 중고등학생들처럼, 중고등학생들은 예전의 초등학생, 초등학생은 예전의 유치부 같아집니다. 세태가 아무리 이렇다고 하더라도 영적인 사람은 겉모습은 젊어보인다 하더라도 정신적으로는 어른이 되어가야 합니다.

1. 영적으로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은 어려움과 시련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14절).
예수님을 믿고 구원은 받았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구원받기 이전에 우리를 괴롭히던 우리의 연약함이나 세상의 공격들이 여전히 우리를 힘들게 만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이 무방비 상태로, 세상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고, 자신의 연약한, 어린 모습을 아직도 고치고 성숙해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세상의 미혹이나 유혹에 노출되기 쉽고, 세상 시류에 흔들려 다닙니다. 자신의 연약함에 자꾸 걸려 넘어집니다. 그래서 화를 내고 불평을 하고 세상의 공격과 노략질에 사사기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그냥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영적으로 어린 아이의 상태를 벗어나야 합니다. 징징대는 애기 짓도 멈춰야 할 때입니다. 영적으로 자라나는, 어른이 되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2.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알고 믿고 경험해야 합니다(13절).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여 영적 아이가 아니라 영적 어른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없이는 우리에게는 영적 성장도, 영적인 축복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알아야 예수님을 영접해서 영적인 축복의 길, 성장의 길에 들어설 수 있고,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야 영적으로 양식과 사랑을 공급받아 영혼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아야 성령의 충만함과 권세와 능력을 받아 누릴 수가 있는 겁니다.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들은 말씀을 먹고 자라난 사람들입니다(히5:13). 우리에게 세상의 거짓과 속임수와 유혹을 분별하여 선악을 아는 지혜도 필요한데, 그것도 역시 말씀을 가까이 해야 얻어지는 겁니다(히5:14).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워서 영적으로 공급받고 자라기 위해서라도, 지혜가 풍성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열심히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성경일독과 같은 기회를 자꾸 가져야 합니다.

3. 어른이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사랑이 꼭 필요합니다(15절).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알고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은 인식의 차원이 아닙니다. 이는 실존의 차원입니다. 즉 우리 존재가 예수님의 희생과 가르침을 만나서 그분의 희생에 담겨져 있는 사랑을 만날 때, 우리의 차가워져 있는 영혼이 사랑으로 뜨거워지는 겁니다. 사람이 성장하는 것은 말로 되지 않고 사랑으로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할수록 더 풍성해지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도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진다라고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사랑 없이는 감동도 없고, 사랑 없으면 실천도 없고, 사랑 없으면 변화도 없습니다. 사랑이 부어지는 곳에 영적인 변화와 성장이 있습니다. 신체적으로도 어른이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것이고, 어린 아이는 그런 어른들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겁니다. 돈과 교육과 후원은 모두 사랑에 근거한 것이어야 효과가 있고요. 그래서 우리 모두가 사랑에 풍성한 영적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 예수님을 어느 때까지 세상의 유혹과 속임수에 넘어지며,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괴로워하시겠습니까? 이젠 좀 그 지겨운 쳇바퀴에서 벗어나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웬만한 세상의 공격과 속임수와 유혹을 이기고 우리의 연약함에서는 자유함을 얻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 공동체를 세우는 길이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 때문에 축복받는 길입니다(16절).

1101_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6:19-20)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삶의 목적 중에 제일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겁니다. 그러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우리 사회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결정으로 살아가는 법에 익숙합니다. 지금과 같이 개인화되고 포스트모던화된 사회에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1.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합니다(20절).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권리가 있고 자율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의 것을 자기 맘대로 하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우리는 물질의 노예요, 세상 사상의 노예요, 감정과 상처의 노예입니다. 우리가 원하는대로 선을 행하지 못하고 사는 삶은 바로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겁니다(요8:34). 지금도 우리는 환경과 상황과 능력의 한계에 갇혀서 옴싹달싹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더 이상 죄와 세상에 매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와 세상의 굴레에서 해방되었습니다(롬6:18,8:2).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자녀이자,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 맘대로, 내 뜻대로 살 것이 아니라(어차피 우리는 세상과 죄의 노예라서 자유롭게 살수도 없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첫 번째는 내가 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것이며, 내 뜻대로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함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2. 하나님의 뜻인 선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됩니다(마5:16).
내 뜻대로, 나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은 결국 세상의 노예로, 돈과 쾌락의 노예로, 또 세상 우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들은 다 이기심이요 갈등이요 불안이요 불평이요 죽음과 낙망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선을 이루기 시작합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고, 영생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며 살게 됩니다. 결국 그 열매인 선한 행위가, 선한 삶이 하나님께 기쁨이요 영광이 되게 됩니다(벧전2:12).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릴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전파하는 길이요,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순종함으로써 또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려면 지금 할 수 있는 한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3. 내 몸이 거룩한 성전임을 기억, 그것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됩니다(19절).
이제 죄의 종이 아니요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낮게 여겨서는 안되는 것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명칭 안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과 하나님의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이라는 특권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의지하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엡2:22). 이미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면, 우리는 그 성전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무를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그 하나하나의 헌신과 행위가 하나님께는 선한 것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가 됩니다.

결론 :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의 종이요, 어둠의 노예이니까,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생명이 됩니다. 또 그 지위에 맞게 선을 행하며, 성령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장소로 부족함 없게 하려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 모든 시도와 노력이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기쁨이 됩니다. 우리 삶에는 선한 열매, 영원한 영광이 됩니다.

글쓴이 susueoul,

1025_말씀의 능력(딤후3:15-17)

오늘 저녁부터 성경일독학교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정신없는 때에 왜 우리는 성경일독까지 하려는 걸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가지는 능력은 오직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 삶 가운데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같이 나누기를 바랍니다.

1. 말씀은 어그러지고 이탈한 우리의 삶을 바르게 인도합니다(16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에도 그조차 알지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올바른 길, 제대로 된 길을 가르쳐 주는 가르침이나 스승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말씀은 우리에게 바르게 사는 길, 승리하는 길, 인생을 보람 있게 사는 길을 교훈으로 가르쳐 줍니다. 잘못된 길을 갈 때면, 말씀이 우리를 후리쳐서라도 가르칩니다. 마음에 따끔한 깨우침을 주셔서 우리가 정신차려서 바른 길로 돌아오도록 역사하십니다. 이처럼 말씀은 우리를 교육합니다. 아무리 윤리교육을 한다고 아이들이 윤리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고, 공중도덕을 정립해서 선전한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이 되어서, 스스로 복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모든 역할을 하나님의 말씀이 하십니다. 말씀의 올바름이, 진리됨이, 이치가 우리를 자발적으로 순종하도록 만드십니다.

2.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십니다(17절).
아이들에게 바른 길, 마땅한 바를 가르치면 대게는 두가지 이유 때문에 그것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첫째는 마음이 감동받지 못해서 그 가르침을 못 받아들이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마음에 감동을 되어서 그 가르침대로 살고는 싶은데,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무능함 때문에,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 때문에 따르고 싶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우리에게 모든 필요한 가르침을 주실 뿐 아니라, 그 말씀을 들으면서 그 말씀 대로 살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더 나아가 그 말씀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신기하게 생기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인 것이지요. 그래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우리 안에 자꾸 선한 일에 대한 열망과 지혜가 생겨나서 그 일을 전부하지 못하더라도 한두가지라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우리가 성경일독을 통해서 이런 능력을 사모합니다.

3. 말씀은 가장 근본적인 영적인 구원의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15절).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교훈과 바르게 함과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은 단지 우리를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의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을 위함이 아닙니다. 이는 바로 영적인 중생의 결과요 열매입니다. 성경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주인되심과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그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새로운 생명 즉 영생을 얻게 된다는 가르침이 가장 중심에 있습니다. 영적인 재탄생없이, 거듭남 없이 도덕적인 성장은 겉모습에 불과하며, 우리의 가장 깊숙한 곳에 박혀 있는 죄성과 부도덕함과 이기심은 영적인 재탄생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즉 옛 자아가 죽고, 새로운 자아가 탄생해야, 그 다음부터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선한 일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우리를 진정한 출생의 목적과 의미를 다 실행하게 인도해 줄 유일한 인도자이며, 가이드입니다. 이 험악한 사태 속에서도 우리가 깨어 기도하며, 영적으로 패배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성경일독에 참여하시든지, 말씀을 항상 가까이 하시든지, 말씀의 능력과 공급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