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_겉보다는 안을 먼저(마23:23-26)

우리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약합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에 쉽게 흔들리고, 사물의 본질을 잘 보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판단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겉을 꾸미고, 겉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일에 더 열중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아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겉도 좋지만, 안에 있는 것에 주의를 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안에 있는 동기와 자세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1. 안이 바르지 않으면 겉에 드러나는 열매도 바를 수 없습니다(24절).
안은 신경쓰지 않으면 겉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십일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예배도 드리지만, 문제는 그들의 안에는 믿음이 없고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사모함이 없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겉으로 드러나는 열매가 사랑의 열매가 되지 못합니다. 그들의 예배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사1:1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제물이 아니라 상한 심령, 겸손한 심령이니까요(시51:17). 마음이 담겨 지지 않은 행동은 사람들에게도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겉으로는 의로워 보일 수는 있어도, 실제 의로운 열매는 그런 사람의 삶 가운데 주어지기 어렵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자세가 비뚤어져 있으니까 예수님께 묻는 질문도 비뚤어져 있는 겁니다(마12:2). 그러다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대해서도 보지 못하고 무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안이 바르지 못하니까, 영적 세계에서 바른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겁니다.

2. 안을 먼저 고쳐서 겉이 고쳐집니다(26절).
병을 고칠 때에도 나쁜 의사는 겉에 드러난 현상만 다스리고, 좋은 의사는 병의 근원을 찾아 고치려 합니다. 우리 삶에서도 좋은 열매를 맺고 싶으면 겉모습을 그럴사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을 고쳐야 합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영적으루 무지해서 길을 잃어버린 바리새인들에게 안을 먼저 깨끗이 해야 겉도 깨끗해진다고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 겉이 올바르게 질서 지워지고 선한 열매 맺으려면 우리 안을 먼저 고쳐서 질서 있고 선해져야 합니다. 모든 악의 근원은 겉에 있지 않고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막7:20). 우리의 마음 자세가 잘못되었으니까, 아무리 율법을 행하려 해도 율법을 제대로 실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안에 사랑을 품고 행하면 그것이 율법의 완성을 향해서 나아갑니다(롬13:10). 눈가림으로 하는 행위는 하나님도 기쁘게 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사람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종들은 실제 삶에서도 모든 상관에게 그리스도께 하는 것처럼 마음을 다해서 섬겨야 합니다(엡6:6). 하나님께서는 겉모습을 보지 않으시고 마음이 바르게 된 자, 고쳐진 자, 진실한 자를 들어서 쓰십니다(삼상16:7). 그래서 키가 큰 다윗의 형들이 아니라 가장 연약한 막내 다윗을 하나님의 종으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3. 안을 고치기 위해서는 영혼의 의사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히10:22).
우리의 겉을 고치기도 힘들지만, 우리 안에 있는 것들, 마음과 생각과 감정을 고치는 일은 더 힘듭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마음이 씻어져서 악한 양심이 선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생각과 감정이 고쳐져야 합니다(딤후3:16). 말씀으로 우리 마음이 고쳐지면 그 열매가 선한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안을 고치시기 위해서 율법을 겉에 있는 성경으로만 우리에게 주지 않으시고 우리 안에 언약을 새겨 주시고 우리 안에 성령의 감동을 허락하십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진실하신 사랑과 헌신을 우리가 마주하면 그 사랑과 뜨거운 헌신 때문에 우리의 가치관과 감성과 생각과 마음이 바뀝니다(고후5:15).

결론 :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아는 분들이라면, 영의 세계가 있는 분이라면, 겉에 신경쓰기 보다 먼저 안에 관심을 가지고 고치려 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의 내면이 바뀌어 모든 인생이 바뀌기를 소망합니다.

1003_관계의 회복(엡2:12-16)

지금 코로나 때문에 영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우리 교인들이 하나님과 서로에게서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자주 못 보면 마음도 멀어집니다. 이제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일이 관계의 회복입니다. 그것은 지금부터라도 힘써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무너진 관계나 훼손된 관계가 어떻게 하면 회복될 수 있을까요?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모든 분들에게 오늘 말씀이 좋은 지침과 은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1. 하나님과 멀어지면서 모든 관계가 무너집니다(12절).
오늘 말씀은 첫째로 이방인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관계가 망가지고 훼손된 가장 중요한 이유를 잘 가르쳐 주십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없으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없으면 우리는 모든 관계가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할 때 모든 관계가 깨어진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면서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와 친밀함이 깨어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서로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심지어는 자연과의 화평했던 관계가 깨어집니다. 실제로 우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들, 교우들, 친구들과 관계가 깨어지는 것은 내 마음에 평안이 없고 여유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내 삶에 대해서 긍정하지 못할 때, 스트레스로 긴장감이 높을 때, 그 모든 것이 내 이웃과의 관계가 무너지는 것으로 확대됩니다. 이 모든 긴장감과 스트레스는 우리 안에 하나님이 없을 때 넘치게 됩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삶을 향해 선한 계획과 도움을 제공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주님의 은혜의 공급이 없을 때, 우리 안에 차게 됩니다. 하나님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은혜로 채워지면서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2.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합니다(13,14절).
하나님 없어서 깨어지고 무너진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노력은 부족합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원수된 것, 나누어진 것, 모든 막힌 담을 십자가에게 당신의 육체로 허물어 버리시면서 이어져 하나되기 시작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화평을 이루기 시작하면서 관계의 회복이 시작됩니다. 실제로 예수님 만나 하나님의 사랑도 경험하고 공급하심도 경험하면 우리 영혼이 평안을 알게 되고 나를 괴롭히는 이웃을 품을 수 있는 여유와 사랑과 이유와 근거가 생깁니다.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영적으로 우리가 은혜를 받고 나 자신과의 관계도, 이웃과의 관계도, 자연과의 관계도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화평을 이루시면서 우리보고 화목케 하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고후5:18).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우리는 이웃과의 관계도 회복할 수 있는 능력과 동기와 근거를 가지게 됩니다.

3. 예수님은 우리에게 관계 회복의 방법도 가르쳐주십니다(16,17절).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관계 회복의 능력과 이유, 근거를 주실 뿐 아니라, 우리가 실제적으로 관계가 망가진 사람과 화목할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자신을 먼저 희생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주장하면서, 하나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과 망가진 관계가 회복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망가진 관계의 회복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먼저 당신의 몸을 희생하시면서 화목케 되는 과정을 시작해 주셔서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서로의 망가진 관계도 자신을 먼저 희생하고 낮춤으로서 회복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결론 : 우리 모두는 깨어진 관계 가운데 살아갑니다.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관계 회복부터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그 결과가 이 땅에서 모든 관계가 회복되고 같이 평안을 누리는 영적인 열매가 있기를 바랍니다.

0926_ 예수님 닮아갑시다(마19:20~22)


세상에서는 뭔가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기업에서 실적도 그렇고, 어느 단체의 장이 되어서 무슨 행사를 했는지, 무슨 업적을 이루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물질세계에만 갇혀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의 능력이나 헌신이나 업적을 평가하는 유일한 길이니까요. 그러나 우리 생명의 길을 걷는 신앙인들은 다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것은 선행이 아닙니다(20절).
오늘 부자 청년의 비유는 많은 분들이 아실텐데,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율법을 제대로 지켜왔던 신실한 청년이었습니다. 율법을 따라 행했고, 율법에 흠이 없었던 청년입니다. 세상에서는 칭찬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부족하다고 하십니다. 선행으로는, 율법의 실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겁니다. 사실 율법을 실천한다고, 선한 행위를 한다고 사람 마음 속 악이 다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사람의 양심은 조각난채 그대로 있습니다. 실천하는 행위도 항상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은 아니고 자신의 업적을 위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성취를 보이기 위해 하는 것처럼 이기적인 동기가 많습니다. 그런 내적인 성장이 부족한 상태로는 온전한 영적 성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온전한 삶의 제사가 아닙니다.

2. 믿는 자로서 온전해지는 길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 뿐입니다(21절).
율법은 제대로 실천했지만 아직 부족한 청년에게 예수님께서는 온전해지려면 두가지를 더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는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두번째는 나를 따르라입니다. 여기서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는 일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전제 조건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실천하는 것 중에 하나에 불과합니다. 즉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젊은 청년이 온전해지는 길인 것입니다. 실제로 영적으로 성장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경험해서 은혜 충만한 사람들의 특징은 예전의 자신의 모습에서 달라져서 예수님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 내면이 성정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친절로 내면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예수님 은혜 경험하면 할수록 우리 안에 다른 영혼들을 배려하고 오래 참는 모습이 더 많아집니다. 그러다보면, 예수님처럼 자신을 죽이고 다른 영혼을 살리는 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는 일까지 실천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 닮아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3. 예수님 닮아가는 삶에서 사랑과 순종은 필수입니다(22절).
부자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고 떠나갑니다.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없었던 겁니다. 첫째는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것까지는 엄두를 못 낸 겁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자신이 율법을 실천했다고 자부하는 단계까지 오기까지 자신의 여유로운 사정이 한 몫 했었거든요. 여유가 없으면 먹고 살기 바쁘지 율법을 하나도 빠짐없이 실천하는 일에 시간과 열정을 많이 쓸수 없습니다. 또 무엇보다 그 청년은 자기 자신을 세상적으로 너무 사랑했던 겁니다. 자신을 사랑하니까 천국에 가겠다고 모든 율법에 최선을 다했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눠주라고 하시는 이웃사랑의 실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겁니다. 이 이기적인 사랑도 우리가 예수님 따라가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 바뀌어야 하는 대상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처럼 목숨을 모든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기까지 사랑하는 자로 우리가 성장해 가야 하는 법입니다. 그런 과정은 말씀에 순종하려는 과정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결론 : 여러분은 이 삶에서 무엇을 이루기 원하십니까? 여러 세상적인 성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구주되시고 소망되시는 예수님을 닮아가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온유, 희생과 순종의 자세를 닮아가서 온전한 경지에 이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0919_더 지혜로운 사람(눅14:27-30)

우리 인생은 다 각자의 몫이 있어서 다 다르게 사용됩니다. 어떤 사람은 금그릇과 같이 사용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질그릇과 같이 사용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각자가 해야 할 사명도, 이루어야할 열매의 몫도 각자마다 다릅니다. 이를 비교하는 것은 전혀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몫에 감사하고 그 몫에서 가장 베스트를 이루어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더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것일까요?

1. 예수님의 제자 되는 삶이야말로 지혜로운 삶의 시작입니다(27절).
손자병법에 전쟁을 하기 전에 꼭 상책, 중책, 하책을 엄밀히 따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상중하책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한번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려면 가장 하책을 피하여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그 선택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영적인 여정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부유하고 평안하게 살면 뭐합니까? 영원한 삶과 연결되어 있는 우리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영생을 얻지 못하면, 이 세상의 부귀영화가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삶을 위해서 가장 어리석은 선택은 육신만을 위한 선택을 하는 겁니다. 아무리 똑똑한 것 같아도, 영생을 준비하지 않는 선택은 가장 어리석은 선택으로 우리 인생을 위한 하책에 해당되지도 못합니다. 이런 가장 최악의 선택은 피하면서 지혜로운 선택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2. 영적 여정을 위해서 우리는 지혜로운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28절).
우리가 예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뭔지 알고 그것이 얼마나 풍족하고 영광스럽고 기쁜 삶인지 알아도, 막상 그 삶을 제대로 살아서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 우리는 더 지혜로와져야 합니다. 먼저 더 지혜로운 삶을 만들어가려면 이런 영적 여정을 위해 무엇이 투자되어야 하며,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잘 점검해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삶이 어떤 것이며, 그 과정가운데 내가 지어야 할 십자가가 무엇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위해서 우리가 무슨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 잘 점검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그냥 예전의 내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무슨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점검하지도 않는다면 인생의 지혜로운 선택 중에서 가장 하책을 고른 셈입니다. 선택은 옳지만, 그 과정이 힘들고 빙빙 도는 돌아가는 길이나 쳇바퀴 삶을 살기 쉽습니다. 큰 열매를 맺기 어렵습니다(30절). 이런 대책 없는 하책보다는 영적 열매를 위해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고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더 지혜로운 선택을 하시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3.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비용을 지불하는 삶을 에수님과 함께 걸어갑니다(27절).
가장 하책보다 나은 중책은 이 영적 여정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의지해서 시작하지만 도중에 세상의 분주함에 흔들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잊고 사는 삶입니다. 우리 중에 이런 종류의 선택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의 삶이 분주해서도 그렇고, 세상이 좋아서도 그렇겠지만, 무엇보다 이 영적 여정 가운데 나의 연약함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안되는 것을 잊어버리면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 쉽습니다. 영으로 시작해서 육으로 마치기 쉬운 삶입니다(갈3:3). 반면에 가장 지혜롭고 상책인 선택은 시작도 이 영적 여정을 위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함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시작하며, 도중에도 매순간 자신의 연약함을 인식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기 위해 하나님의 지혜와 도움을 요청하는 선택입니다.

결론 : 여러분의 삶은 상중하책 중 어디에 해당합니까? 아직도 영적 여정의 비용을 지불하기를 거부하고 계십니까? 아직도 그 귀한 여정을 위해 필요한 십자가를 거절하고 있으십니까? 모두 비용을 지불하되, 하나님 의지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모든 영적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치시길 바랍니다.

0912_성령으로 충만해야(엡3:15-19)

지난 몇주간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여 강해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포기해야할 것들 버려할 것들을 자주 나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뭘 해야 한다는 점을 나눌 때마다 두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의를 버리거나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살고 싶어도 잘 안된다는 겁니다. 말씀처럼 거룩하게, 의롭게 살고 싶어도 잘 안되고 매번 실패한다는 점입니다. 또 한가지는 우리가 노력한다고 은혜를 쟁취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늘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서 그런 우리의 딜레마에 대해 말씀의 가르침을 받기를 원합니다.

1. 모든 은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무능한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주십니다(17절).
오늘 말씀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경지가 어디까지이고 그 은혜를 받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간구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 속사람이 강건해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며, 그 사랑 안에 단단히 뿌리박고, 그리스도의 넘치는 사랑을 알고, 그 깊이까지 깨달아 하나님의 충만함을 누리는 것.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우리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식 며칠을 하고, 기도를 몇시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능력도 없이 이 땅에서 고생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은혜로, 사랑으로 이 모든 것을 허락하셔야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우리는 금식하거나 기도하거나 자기 의를 버리기 위해서 분투합니까? 그것은 우리 안에 쪄들어 있는 모든 세상 것들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때 받기 위함이요, 또 우리의 분투만큼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무능하지만 성령께서 우리안에 충만하시면 영적 성장이 가능합니다(16절).
오늘 말씀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구절에서 말하는 모든 영적 성장과 열매들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실현이 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은사와 열매를 허락하시지만, 그 은사와 열매가 우리 안에 자리잡고 우리를 충만하게 하는 역사는 성령님의 도우심입니다. 사실 우리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고 싶어도, 세상에 물든 우리 몸과 맘이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마음으로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의 응답 가운데 살고 싶지만, 피곤하고 분주한 우리 삶 가운데 우리의 연약함이 말씀도 놓치고 기도도 놓치게 되기 쉽습니다. 남을 용서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을 살고 싶어도 우리 영혼이 매일 어둠의 세력과 죄의 유혹에 너무 쉽게 흔들립니다. 넘어질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고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확실하게 되는 점은 바로 우리 혼자의 힘으로는 어떤 영적 성취를 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너무 감사하게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보혜사, 우리를 보호하시고 도와주시는 은혜자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3.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어하는 만큼 성령충만함을 사모해야 합니다(19절).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모든 은혜와 은사와 능력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손 놓고 그냥 있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최소한 우리 죄를 씻으러 예수님께 나아가는 노력은 해야 합니다. 최소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그 은혜를 추구하는 노력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은혜 받기를 원한다는 의사표시이며 행위로 하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런 기도는 당연히 응답받고요. 우리의 노력이 은혜를 하늘로부터 쟁취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해서 자녀로서의 특권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자비하신 마음을 터치하는 겁니다. 그와 동시에 주님 주시는 은혜 받고, 그것을 누리며 열매 맺기 위해서 단순히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령 충만함을 사모하면서 추구해야 합니다.

결론 : 여러분의 영혼은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은 영적 전투를 싸워 승리하고 있습니까? 우리 혼자의 힘으로 못합니다. 오직 성령충만함을 먼저 소망합시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깊은 바다로 나아가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