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 승리(삿6:12-14)

힘든 일이 지속되면 사람들이 흔히 선택하는 옵션은 포기입니다. 포기하고 특별히 그것을 이기려는 노력이나 용기나 열정을 가지지 않고 체념하고서 그 상황에 묻혀 삽니다. 그러다보면 특별한 꿈을 꾸지 않고 삶에 특별한 의미도, 목적도 가지지 않고 세상 따라 흘러가는 겁니다. 지금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면서 혹시 우리가 그런 포기 상태에 들어가는 건 아닌지 점검해봐야 할 것입니다. 대신 오늘 기드온처럼만 행동해도 놀라운 가능성이 열립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때가 되면 우리게 승리를 허락하십니다(12절).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의 약탈을 두려워해서 포도틀 안에서 타작을 하던 겁쟁이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그렇게 무기력할 때, 하나님의 사자가 기도온에게 갑자기 나타나십니다. 하나님 함께 하신다면서. 주변 상황은 하나님께서 안계신 것 같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시거나 잊으신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나 기드온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타나셔서 놀라운 승리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역사를 이루시면서 승리를 이루십니다(14절).

오늘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나타나셔서 민족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기드온에게 오히려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아무 능력도 없고, 겁쟁이처럼 숨어서 타작하던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는 승리의 일꾼이 되라고 요구하시는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무 능력도 없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을 하나님의 승리의 역사에 주인공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서 모든 일을 이루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천지창조의 유지도, 출애굽의 역사도, 심지어는 구원의 역사도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능력도 모세와 같이 순종하는 인간을 통해서 나타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우리가 바로 그런 통로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고 기대하고 의지하는 자를 통하여 일하십니다(13절).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무능력하고 겁이 많은 기드온을 찾아오셔서 이 거대한 일을 이루려고 하셨을까요? 이미 용사로 무장된 사람을 쓰시면 더 편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 기드온처럼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 함께 하시는 이길 수 있다는 기대와 소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기드온은 그 험악한 시기에도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함께 하시다고 인사하는 하나님의 사자에게 감히 말대꾸하면서 하나님 함께 하시는데 왜 이런 재앙이 닥치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 함께 하시는 것에 대한 기준과 소망이 있었던 거죠. 그런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나타나주시고 함께 하신다 약속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신앙과 경험이 쌓여 가면서 용사로 변화되어 갑니다. 조그만 승리가 용사를 만드는 겁니다. 또한 시대의 필요가 사명과 소망을 낳는 겁니다.

결론 : 우리 하나님은 지금 바이러스 사태에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런 험악한 시기에도 하나님을 기대하고 의지하는 자를 통해서 일을 이루시고 승리를 이루십니다. 그런 기대로 하나님의 부름과 쓰임 받으면서 시대와 환난을 이기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기도합니다.

0329-예수님의 사랑 때문에(마9:35-36)

우리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같은 바이러스 사태와 같은 외부적인 환란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받는 상처나 배신이 큽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점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어려움을 당한 분들은 하나님께도 똑같은 자세를 지니게 된다는 겁니다. 특별히 그 상처가 부모님에게 받은 거라면, 고스란히 하나님께 투영이 됩니다. 그런 분들일수록 이런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더 마음에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런 의구심이 조금이라도 사라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36절).

사람이 타인 때문에 상처받고 어려워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상대방에게서 사랑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풍부한 부모님에게서 자란 사람은 아무리 가난해도, 힘든 환경에서 자라났어도, 최소한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없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확신하기에, 다른 어려움이나 꾸지람도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가슴에 느끼고 있다면, 아무리 힘든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이 잘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나님 원망하거나 힘든 환경에 좌절해 버리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느냐 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예수님이라는 말은 많이 하지만, 정작 예수님의 사랑을 잘 느껴보지 못하고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해서 항상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잘 못느끼는 분들은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을 자세히 바라보세요. 마지막 피한방울까지 그 죄 없는 예수님께서 도대체 누구를 위해 흘리셨는지 묵상해 보세요.

  1. 예수님의 사랑은 진리와 함께 합니다(35절).

예수님의 사랑이 더 감사하고 더 은혜로운 것은 그 사랑이 우리의 연약함을 덮고도 남음이 있으면서도,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들을 그냥 고치시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먼저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복음으로 공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달래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의 근원인 죄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죄의 자리에서 떠나서 생명의 길, 진리의 길로 걸어오도록 모든 저항과 오해를 무릅쓰고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사랑의 진리가 함께 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행적을 보는 사람들은 감동하면서 온 몸과 마음을 바쳐 따르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사랑은 능력도 함께 합니다.(35절).

만약 예수님의 사랑이 어느 돈 없고 가난하고 힘없고 약한 부모님의 사랑과 같이 우리를 보호해 주지 못하는 것이라면, 남들에게 함부로 권유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의 사랑은 병자를 고치고, 죄인의 마음을 바꾸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의 사랑입니다. 또한 죄 때문에 죽어가야 할 모든 자들을 죽음에서 해방시키시는 전 우주적인 능력의, 진리의 사랑입니다. 이 어두운 때에도 그 예수님의 생명의 빛이 함께 있어서 우리가 어둠에 파묻히지 않을 수가 있는 겁니다.

결론 : 우리 예수님의 사랑은 진짜이며, 파워풀합니다. 그 사랑이 있기 때문에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지금 좌절하지 않게 됩니다. 천국에 대해서 확신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 받아서 어둠을 이기시길 축복드립니다.

0322-어둠 대신 빛을(출15:23-26)

다음주에 개학을 하면 본격적으로 예배를 다시 시작하려던 작은 소망이 무너졌습니다. 제 작은 소망처럼 되지 않았다고 해서 절망하거나 낙심할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영상으로, 또는 소수가 모여서 예배는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그 무게를 이겨낼 수 있을지 말씀을 통해서 같이 은혜를 나누길 바랍니다.

  1. 현실의 어려움은 우리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더 힘들어집니다(24절).

오늘 히브리 사람들은 출애굽해서 미디안 땅에 들어서자마자 물을 사흘 동안 구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만납니다(22절). 광야에서 물조차 없으니 더 힘들었을 것은 다 이해가 됩니다. 문제는 그 상황 가운데 히브리 사람들은 불평과 원망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은 자기 마음도 아프게 만들고, 공동체를 깨뜨리며, 사재기와 같은 공황상태를 낳기만 합니다. 더군다나 그들을 애굽 종살이에서 빼내고 홍해를 갈라 이곳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의 말씀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26절). 한마디로 상황을 낫게 만들지 못하고 더 어렵게 만들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한국사람들은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외국의 유명한 선진국 시민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 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려움을 쉽게 이겨내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짜증낼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가장 밝은 것, 소망이나 교훈, 나아질 점을 선택해서 얻어가는 것이 더 지혜롭습니다.

  1. 환란에 자꾸 어둠을 선택하는 이유는 신앙과 감사가 없어서입니다(25,27절).

히브리 사람들이 물이 없을 때 모세를 원망하며 불평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 하나님께서는 반나절만(11km) 가면 물이 가득한 엘림이라는 풍요로운 오아시스를 만나게 되어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친절과 기적과 사랑을 전혀 기억하고 있었다면 그들은 불평과 원망이라는 어둠이 아니라,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애굽의 10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이정도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자기 기분 좋을 때는 찬양하지만, 조금만 불편하고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장 불평하고 원망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전혀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람의 모습을 히브리인들은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음에 신뢰가 있다면, 감사가 있다면 이렇게 부정적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1. 이해하기 어려워도 지금까지 은혜, 진리의 말씀 의지해서 빛을 선택합시다(26절)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생명, 영생, 은혜, 건강, 사랑, 축복등을 기억한다면, 지금의 아픔과 어려움을 조금만 더 참고 믿음으로 승리하려고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엘림과 같은 하나님의 뜻이나 계획을 다 알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혜를 신뢰해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또, 지금의 고난이 우리의 죄악 때문인지도 모르고, 우리의 기도 부족 때문인지도 모르니까, 열심히 나와 우리 공동체의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엘림에, 가나안 땅에, 영생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결론 : 요즘에는 제가 한국인이고 한국 땅에 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조금 나아졌다고 게을러질 것이 아니라, 더 열심히 회개하며 말씀 붙잡고 소망 가운데에서 이 고난을 같이 이겨나가려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0315-어둠에서의 자유(요8:33-36)

봄이 되면 씨를 뿌리고 우리는 열매를 기대합니다. 저도 여러 번 나눴던 것처럼 우리 삶 가운데에  뭔가에 대한 씨앗을 심고 있으며, 그것은 반드시 언젠가 우리 삶 가운에 열매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심리와 경제와 가정과 신앙에 다 적용이 됩니다.

  1. 우리가 세상을 의지하고 그곳에 속해있을 때 자유롭지 못합니다(34절).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면 너희가 자유롭게 된다는 말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합니다. 자기들은 종이었던 적이 없다고(33절). 이 말은 자신들의 처지를 잘 모르고 던지는 어리석은 제자들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로마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심리적으로나 영적으로 죄를 범해서 죄의 노예, 율법주의의 노예였었습니다. 자신들이 세상을 의식하고 세상에서 가진 것에 의지할수록 세상에 속박이 됩니다. 돈을 의지하면 돈의 노예가 되고, 자신의 선행을 의지하면 자기 의의 노예가 되고, 세상의 안정감이나 보호를 의지하면 그것의 노예가 됩니다. 세상의 것을 심으니까, 심리적으로나 영적으로 세상에 속박이 되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를 속박하는 우상이니까요.

  1. 오직 의지해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36절).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자기의 선행이나 행위에 의지하는 율법주의가 얼마나 허왕된 것이고 죄악된 것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세상의 것을 의지하는 모든 것들이 다 우상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실제로 의지해서 속박되지 않는 유일한 대상은 바로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아버지이시며 보호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를 다녀서 세상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우리가 세상의 헛된 우상들과 그 속박들로부터 자유롭게 되기 위한 교육의 과정이고, 그 과정 가운데 우리 영혼은 이미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죄에서 자유함이고, 그리고 죄책감에서 자유함이며, 죄가 가져다주는 공포와 패배의식과 불안함에서의 자유함입니다.

  1.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진정한 자유함이 있습니다(35절).

나를 속박하지 않는, 노예 삼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면, 우리에게는 양자, 즉 자녀의 권세와 자유가 주어집니다. 자녀는 자애로운 아버지의 집에서 쫓겨날 것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능력이 많은 부모님 댁에서 굶주릴 것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사랑받는 자녀는 부모님 안에서 불법적인 것 외에는 모든 자유를 누립니다. 마음에 평안하고, 담대함이 가득차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녀도 부모님 댁을 떠나 낯선 곳에 가면 그 누가 해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주님 안에 있을 때, 주님만 의지할 때 진정한 자유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결론 : 다행이도 코로나 사태가 조금 진정이 되어갑니다. 사망률도 그 어느 나라보다 낮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지할 것은 우리나라 정부도, 보건 당국도, 의사들이나 약품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아버지 되시고 참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0308-예수님께 주목합시다(마14:27-31)

코로나 사태가 벌써 1달 가까이 진행되고 있네요. 너무나도 많은 분들이 지금 두려움과 분노와 초조함 속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없으면 우리는 제대로 설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해 봅시다.

1. 우리의 힘으로는 이 세상의 위기를 이길 수 없습니다(24, 29절).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는 뒤에 홀로 남아계시고, 제자들만 먼저 갈릴리 호수로 배를 몰고 나설 때 갈릴리 호수에서는 돌풍으로 인해 폭풍우가 일었고, 제자들은 아무리 고생을 하며 이겨내지 못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다 위를 걸어서 오시고, 그것을 본 베드로는 물 위로 걷게 허락해 달라고 했다가, 물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베드로 혼자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이겨내지 못합니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맨 처음 두려움, 이젠 분노와 좌절감으로 바뀌고 있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스스로의 다짐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인내와 극복의 한계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오늘의 위기를 혼자서의 힘만으로 이겨내려고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그 두려움과 분노, 스트레스의 무게에 짓눌리고 말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31절).
폭풍우로 인해 고생하는 제자들과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는 바로 옆에 예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위기를 맞은 제자들의 배에 다가와 주셨고, 물에 빠져가는 베드로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그것도 어려움을 만나는 사랑하는 자들의 필요에 ‘즉시’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의 특권입니다. 이미 알고 있고 이미 느끼고 있는 예수님에게 손을 내밀어 구원을 요청하면 되니까요. 아직 예수님을 모르고 그분의 사랑을 의지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고 힘들고 불확실합니다. 이이 예수님의 은혜도 알고, 기도의 능력도 아는 분들은 어서 옆에 와 계시는 예수님께 기도로 요청하여 그분께서 내미시는 손을 잡아 이 시기를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께서 옆에 계시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목해야 합니다(30절).
베드로는 물 위를 걸을 때 예수님의 허락을 받았고, 이미 예수님께서 옆에 계신 것도 알고, 예수님께서 모든 일을 하시며 자신을 도와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물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그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변함이 없지만, 맨 처음에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바람의 무서움보다는 물 위를 걷는다는 기대나 설레임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주변의 혼란스러운 상황에 가게 되니까, 마음에 평화가 사라지고 불안과 공포와 불신이 생겨나는 겁니다. 반면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공포 대신에 신기한 경험을 하는 흥분이 컸을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상황을 바라보면 마음에 불안과 불평과 분노가 생겨나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 마음에 평안이 생기고 소망이 생겨 지금 위기나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고 담대해집니다.

결론 : 지금 우리나라는 큰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상황을 보면 우리는 흔들릴 것이고 옆에 와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마음에 평안이 오며 담대해질 것입니다. 지금 예배 드리는 모든 분들이 그런 은혜가운데 있으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