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1_기다림의 원칙(눅2:25-29)


지난주에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우리의 성급함에 대해서 말씀 나눴습니다. 그래서 실패하고 실수하는 우리의 모습 때문에 우리 스스로 어려움 당하는 것도 보았고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살아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기다림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오늘 시므온의 모습을 통해서 기다림이 신앙 가운데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같이 은혜 나누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기다림을 훈련해야 합니다(26절).
시므온은 지금 이스라엘의 위로를 바라면서 기다리던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다보니까,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기다림을 가지기 이전에 필요한 요소가 바로 이런 영적인 간절함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응답하심을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힘들고, 그러면 더더욱 기다릴 수 없는 법입니다. 아무튼 시므온은 성령의 은혜도 경험하면서 지금 죽기 전에 이스라엘의 위로인 그리스도를 볼 것을 약속받습니다. 그 시므온에게 필요한 것은 그래서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 위한 필수적인 준비 과정입니다.

2.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기다려야 합니다(25절).
시므온이 하나님의 때와 응답을 기다린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게 아닙니다. 그냥 세월만 보내느 ㄴ것이 아닙니다. 그는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 결과 매 순간마다 성령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아니면 사람들은 자기 멋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느슨해집니다. 눈에 보이는 유혹에 흔들립니다. 그러다가 사울왕처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왕위조차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빼앗기게 되거나 놓치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기다리지 않으면 세상의 위협과 유혹에 흔들리고 넘어지게 됩니다. 초대교회 제자들도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그 위험한 예루살렘에서 기도하면서 기다리다가, 성령 충만함의 은혜를 얻게 된 것입니다(행1:4). 하나님 안에서 기다리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여유와 능력이 안 생깁니다. 또 그 기다림이 너무 힘들고 어렵고 지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위로가 있고, 또 소망을 되 뇌여 주시고, 또 현재를 이길 능력도 주십니다.

3. 하나님 안에서 기다리다보면, 우리는 새 은혜와 사명을 맞을 준비가 됩니다(27절).
시므온은 하나님 안에서 기다리다 보니까, 은혜의 자리로 저절로 가게 됩니다. 바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성전에 들어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입니다. 드디어 이스라엘의 위로가 임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다보니까, 그 역사를 직관하게 됩니다. 그것 뿐 아니라, 예수님을 환영하는 귀한 사역과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예언까지 전하는 사명을 담당하게 됩니다(34-35절). 바로 시므온의 기다림이 미래의 사역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가는 시간이 되었던 겁니다. 지금 코로나 4단계를 맞이하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어야 지금의 위기와 스트레스를 이길 힘도 있고, 이후에 펼쳐질 새로운 세상의 영적 사역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가는 겁니다.

결론 : 우리 서서울교회 가족 모두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릴 수 있는 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과 약속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0704_성급함(창16:2-4)

전세계 사람들이 아는 한국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빨리 빨리입니다. 이게 옥스퍼드사전에도 올라갔다는 소리가 있더라고요. 아무튼 이 빨리 빨리의 특징이 지금 우리 한국을 만드는데 일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폐해는 너무 많습니다. 특별히 영적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 하나님과 함께 이 땅에서 승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조급함은 하나님의 일을 망치는 치명적인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아브람의 경험을 통해서 영적으로 성급함의 문제를 같이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1.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성급함의 실수를 범합니다(2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 사래를 통해서 약속의 자녀를 주신다고 이미 여러번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직전에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으로 올 때 주신 약속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셨습니다(15:5-6). 문제는 시간이 조금 지난 이후에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때 아내 사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자녀주지 않음을 한탄하면서, 아브람에게 자기의 애굽 출신 여종 하갈을 첩으로 삼아, 자녀를 얻게 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아브람은 아이를 낳지 못해 스트레스 받는 아내 사래의 마음도 알기 때문에 그 말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결정이 결국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주신다는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니까, 자기 멋대로, 맘대로, 상황대로 결정해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성급함의 실수를 범할 때는 꼭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선하심을 제대로 신뢰하지 못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을 알면,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를 원하는 마음에 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응답을 구할 것입니다. 결국, 성급함의 실수를 범할 때에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신뢰가 부족할 때입니다.

2. 아브람의 성급한 결정은 꼭 실수를 낳게 됩니다(4절).
아브람과 사래의 성급한 결정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이미 안고 있습니다. 첫째는 첩으로 선택한 하갈이 애굽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의 인간됨을 떠나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되지 못하고, 자세도 언제든지 인본주의적이고, 세상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첩 하갈이 임신한 다음부터 갈등이 생깁니다. 하갈이 여주인 사래를 무시합니다(4절). 자신은 아브람의 후손을 낳았으니까, 아무 자녀를 낳지 못하는 사래에게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을 것을 알고 멸시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성급함은 우리로 하여금 상황을 꼼꼼히 살펴보지 못하게 함으로 꼭 실수를 낳습니다. 특별히 영적으로 열매 맺고 승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성급함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기다리는 과정을 거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않은 결정은 엄청난 손해를 끼치게 됩니다. 바로 오늘 아브람에게는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렇습니다. 그 이스마엘은 정통 장자인 이삭의 앞길을 두고두고 막으니까요. 이스마엘이 사래 자신이 낳을 아들인 이삭을 놀리고 멸시합니다(창21:9). 나중에는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여기는 중동 무슬림을 통해 이삭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지경까지 이르게 됩니다.

3. 성급한 결정들은 항상 우리에게 후회를 남깁니다(5절).
오늘 사래는 자기가 제안한 하갈의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자, 오히려 아브람을 비난합니다. 아기 못낳는 것도 아브람 잘못이고, 하갈이 자기를 무시하는 것도 아브람 잘못이고. 아브람은 어려움 겪는 아내를 배려한답시고 아내의 제안을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실행에 옮겼다가, 큰 난관에 부딪히는 겁니다. 아내도 잃고, 하갈과 뱃속의 자기 애기도 잃게 생긴 겁니다. 이처럼 성급한 결정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계가 태생적으로 있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도 성급함은 항상 후회를 남깁니다. 더군다나, 영적으로 열매 맺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성급함을 항상 조심해서 실수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결론 : 우리의 인생이 급박하게 흘러갑니다. 이런 때일수록 상황도 못 살피고 성급함의 실수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여쭈어 보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 성급함을 피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0627_거룩한 희생(고후1:5-6)

고통 없이 얻는 것도 없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나 우리 사랑하는 자녀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으면 너무 좋겠지만, 인생이, 세상이 그리 녹록치 않아서 고생 없이는, 노력하지 않고서는 귀한 것을 얻지를 못합니다. 똑같이 고생해야 한다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위해서, 좀더 나은 열매를 위해 애쓰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죠.

1. 고생 중에도 거룩하고 보람되고 더 가치있는 고생이 있습니다(5절).
인생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이 우리의 실수로, 우리의 잘못된 선택으로 쓸데없이 고생하는 것입니다. 투자를 잘못해서, 못된 사람 못 알아보고 만나서, 그리고 아무런 소득 없이 쓸데없이 시간과 자원과 열정을 낭비한 경우가 이 세상에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허무한 인생 가운데에서도 가치 있는 고생이 있습니다. 바로 생명을 살리는 고생입니다. 우리 일상에서는 아이를 낳는 고생은 평생 뿐 아니라 내 핏줄이 이어지는 한 가치 있는 고생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을 위한 고난과 희생은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한 희생입니다. 더군다나 우리 예수님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선물하시기 위해서 자기를 죽음 가운데 던져 넣는 희생은 고귀하고 가치 있으며 거룩한 희생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2. 거룩한 희생은 자신을 위할 때가 아니라 타인의 생명을 위할 때 가능합니다(6절).
오늘 바울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영혼들을 위해서 고생하고 희생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본능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영적으로 아직도 어리고 무지하다는 표시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려는 어둠의 계략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고, 혼자만을 위해 살라고 지음 받은 존재도 아닙니다. 우리 혼자만을 위해서 살라고 지음 받은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나라는 경계를 넘어서 이 땅 가운데, 내 주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고 부름 받은 존재입니다. 나 때문에 내 배우자와 내 자녀들이 살게 되라고, 나 때문에 내 공동체가 살고 이 나라가 살기 위해서 지음 받았고 부름 받은 존재입니다. 나만을 위해 산다면, 우리는 우리 삶의 목적과 의미를 전혀 이루지 못하고 살아가는 겁니다. 바울이 이방인에게 선교하지 않았다면 그는 삶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낳지 않았다면, 우리 삶의 가치가 너무 작아지고, 의미도 축소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섬기고 위해서 고생하는 자들의 반경만큼 삶의 반경도 가치도 넓어지는 겁니다.

3. 우리가 거룩한 희생을 택할 때 거룩한 위로가 하늘로부터 임합니다(6절).
우리가 남을 위해서 희생만 하고 살라면 그것도 참으로 참기 힘든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를 낳는 고통과 키우는 고생만 있다면 우리는 자녀를 낳기 힘들겠지만, 자녀를 출생하고 키우는데 고생만 있는게 아닙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이 있기 때문에, 고생을 감수하는 겁니다. 우리가 타인을 위한 거룩한 희생을 선택할 때는 우리 삶의 목적과 사명을 이룰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하늘로부터 임하는 위로가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의 위로 뿐 아니라, 나 때문에 살아나는 사람들의 회복과 기쁨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나만을 위해 살라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 백성이 되어야할 우리의 이웃을 위한 아름답고 가치 있는 거룩한 희생을 우리 모두 감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목적을 이루는 길이요, 그것이 우리의 허무한 삶 가운데 보람을 누리면서 가치 있어지는 길입니다.

0620_밝은 면을 찾읍시다(출4:1-4)

지금과 같이 모든 것이 다 힘든 시기에 우리가 놓치기 쉬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내게 있는, 또 내 주변에 있는 밝은 면들, 즉 긍정적인 요소들을 놓치기가 쉽다는 겁니다. 지금 내게 닥쳐 오는 모든 어려움과 힘든 것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내게 있는 소중한 것들, 장점들, 또 내 주변 사람들의 감사한 것들을 놓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밝은 면을 바라보려고 해야 합니다. 오늘 모세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왜 밝은 면을 더 열심히 찾아야 하는지 은혜 나누길 원합니다.

1. 아무리 상황이 힘들지라도 항상 밝은 희망은 존재합니다(2절).
오늘 말씀에 나오는 모세는 인생을 포기한 사람이었습니다. 40세까지 이집트의 왕자였다가, 한순간 자신의 힘 자랑하다가 애굽 관리 한명 죽였다고 반란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도망친, 모든 것을 포기하고 40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낸 인생 포기자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상대해야 하는 대상이 전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나라, 애굽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왕자였던 자신의 과거나 뭔가 할 수 있을 줄 알았던 모든 젊음도 다 잃어버렸으니, 그에게 남은 것은 몸뚱아리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재산도 늘릴려고 생각지도 않은 모든 것을 포기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무슨 희망이, 밝은 가능성이 존재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만난 그는 믿기지 않는 밝은 희망의 빛줄기가 몇 개 존재함을 깨닫습니다. 바로 자신의 지팡이입니다. 아무 쓸작에도 없는, 그저 양 치기 위해, 몸 지탱하기 위해 들고 다니는 지팡이가 미래의 역사를 열어가는 통로가 됩니다. 이 지팡이는 바로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뱀이 되고, 홍해를 가르는 도구가 됩니다. 모든 것 다 사라진 것 같은 인생에도 지팡이 하나만 있어도 가능성이 열리는 겁니다.

2. 모든 밝은 면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되시기 때문에 생깁니다(3절).
하나님 만나기 전에 모세의 지팡이는 그냥 말라비틀어진 나무조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까, 그것이 이적의 도구가 되는 겁니다. 모세의 형 아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계시고 함께 하시니까, 자신 없어진, 애굽말을 다 잃어버린 모세의 대변인으로 둔갑하는 겁니다. 우리의 구질구질한 삶 가운데 밝은 면을 일부러 찾을 수 있지만, 인간적으로는 그 밝은 면이 미래에 무슨 소용이 될지 잘 모릅니다. 지팡이가 무슨 소용이고, 아론이 무슨 소용입니까? 가능성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주셨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 모든 것들 하나 하나가 변하여, 미래를 밝힐 빛이 되는 겁니다. 우리 삶에 희망은 무엇을 가졌느냐에 달려 있는게 아니고, 그 무엇이 하나님 안에서 해석되고 사용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3. 밝은 면을 바라보려는 노력 자체가 우리를 승리로 이끕니다(4절).
지팡이가 변한 뱀을 무서워 피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명하십니다. 모세는 모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놀라운 능력의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밝은 면을 바라보려는 노력, 밝은 면을 따라가려는 용트림이 사실 우리에게서 모든 부정적인 태도와 감정을 물리치는 큰 계기가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낙담하고 있으면 모세처럼 40년 포기하고 살게 되거든요. 주변 사람들과 마찰을 겪고, 괴롭게 하고, 낙담하는 자신 때문에 온갖 부정적인 감정, 가진 것도 별거 아니라고 비하하고 낙담하는 파괴적인 성향을 가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때문에 밝은 면을 바라보려는 노력 자체가 우리에게 이미 승리로 방향을 트는 계기가 됩니다.

결론 : 우리 모든 성도님들께서 이 힘든 시기에도 하나님께서 이미 허락하신 밝은 면들을 찾으려고 노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이 다 하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손길이 닿으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다 보석이요, 미래의 희망이요, 귀한 도구입니다. 주변에서 밝은 면을 찾읍시다.

0613_기도를 훈련합시다(행4:29-32)

코로나 사태 이후 예배도 놓치는 분들에게 기도에 대해서 자꾸 이야기하는 것이 부적절해 보이지만, 기도의 은혜와 특권을 조금이라도 경험한 저로서는 그 은혜를 나눌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호흡줄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숨 쉬기를 원하신다면 반드시 기도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1. 기도는 훈련해야 우리의 세상적인 모습을 뛰어넘을 수 있게 늘게 됩니다(29절).
오늘 말씀에 사도들의 기도를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시는 주권자임과 영적인 은사와 사역에 대한 열망과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기 원하는 거룩한 내용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이 기도를 하는 분들이 얼마 전에는 기도 시간에 졸던 분들입니다(마26:34). 그래서 영적으로도 실패하던 분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기도가 엄청나게 성장했을까요? 그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승천 이후 실패했던 제자들이 죽기 살기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익숙해지면서 성령의 은혜가 임하고, 그들의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혜는 이미 선물로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지만, 그 은혜 받는 자리로 나아가는 주체는 우리이고, 우리가 기도할 때 그 은혜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2. 우리가 기도에 훈련될 때, 우리의 삶이, 생각이 달라지게 됩니다(31절).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오늘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얼마전까지 마가 다락방에 숨어 있던 사람인데, 기도 훈련하다 보니, 성령의 체험도 하고, 마음이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현실의 어려움과 공포를 이기는 겁니다. 천국의 소망으로 더욱 가득 차게 되는 겁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분간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삶의 우선 순위도 바뀌고, 삶의 열매도 바뀝니다. 은혜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주시지만, 그것을 받아 먹어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우리가 예배하고 기도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놓치게 됩니다. 출애굽 1세대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입구에서 불순종함으로 광야로 40년 동안 돌아다녀야 했던 것처럼요. 이렇게 기도 훈련을 통해 성령의 체험과 은사가 차기 시작하면 우리 삶의 우선순위도, 가치관도 바뀌게 됩니다.

3.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 은혜의 자리는 기도로 찾아갑니다(32절).
우리가 기도로 성령 충만함을 쟁취하지 못합니다. 성령의 은혜는 오직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허락하셔야만 우리가 그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기도 훈련은 단지 그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우리의 죄성과 연약함을 깨닫고 버리는 시간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준비가 기도 훈련을 통해서 되어 가게 됩니다.

결론 : 우리 모든 성도님들께서 성령의 은혜를 누리면서 이 땅에서도 영적으로 승리하면서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 귀한 은혜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시지만, 우리의 시선이 세상을 향해 있으면 무엇이 하나님의 은혜인지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기도 훈련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은혜를 깨닫고 받아 누리는 모든 분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