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4-고난을 성숙의 기회로 (삼상 22:1~3)

아직 고난의 끝이 보이질 않네요. 많은 분들이 힘들어할텐데, 이런 때 신앙을 가진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런 고난의 시간이 우리에게 있어서 성숙의 기회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믿는 자에게 고난은 그냥 불행이거나 나를 멸망시키고 무너뜨리는 징벌이 아니거든요. 믿는 자에게 고난은 오히려 연약한 우리의 옛 모습, 더러운 옛 습관을 버리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성숙의 시간입니다. 다윗이 경험한 것처럼요.

1. 억울한 다윗은 광야의 훈련을 통해서 궁핍을 이기는 법을 배웁니다(1절).
다윗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시기심과 자격지심에 찌들은 상관 사울와 때문에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유다광야 아둘람굴로 도망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고난을 허락하실까요? 그것은 그에게 겸손해져서 궁핍함 가운데에서도 지내는 법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목동의 자리를 경험은 했지만, 이스라엘 전체에 등장한 이후로 다윗은 승승장구, 언제나 자신만만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의 군대장관이 약관의 나이로 되었고, 심지어 사울왕의 딸 미갈과 결혼하는 영광까지 누립니다. 문제는 그렇게 승승장구하는 다윗은 아직 자신의 권력과 능력 가운데 겸손해질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하나님의 공동체 이스라엘의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교만이 아니라 겸손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시간과 훈련이 필요했던 겁니다. 이미 마련되어 있는 권력 일부분을 받아 유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가운데 리더십을 만들어가고, 고난을 이겨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연습이 하나님 공동체의 리더가 되어야 하는 다윗에게는 필요했던 겁니다. 궁핍함에 처할 줄 아는 연습이 우리 모두에게는 필요합니다(빌4:12).

2. 다윗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고 의지해서 승리하는 법을 배웁니다(3절).
사울왕에게 쫓기던 다윗은 첫 번째 선택이 가드왕 아기스에게 몸을 의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왕에게 목숨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인간적으로 유대 땅을 떠나 다른 권력자에게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보기 좋게 실패합니다. 그 다음 선택은 모압왕이었고 그것은 가능했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갓을 통해서 유대땅으로 돌아가라 하십니다. 편안한 자리가 아니라 고난의 자리,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길수 있는 자리로 돌아가라시는 겁니다. 이때 다윗은 사람의 생각이나 편안함이 아니라 불편하고 불안하고 위험이 도사리는 하나님의 계획인 유다광야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적을수록 더더욱 선택은 선명해지는 법입니다. 가장 어려울 때 누가 나의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지가 분명해지는 법입니다. 유다광야와 같은 고난의 때가 하나님 의지하고 순종하는 훈련하기 적합한 장소입니다.

3. 다윗은 광야에서 여러종류의 사람들을 섬기고 리드하는 훈련을 합니다(2절).
광야로 도망한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가족들 뿐 아니라 여러종류의 사람들을 붙여 주십니다. 근데 하필이면 넉넉하고 좋은 교육을 받고, 든든한 사람들이 아니라 환난 당하고 상처 받고 뭔가 부족한 사람들을 붙여주시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사실 같이 지내기 힘듭니다. 상처들이 있어서 조그만 말에도 오해하고 화를 내고, 쉽게 거칠어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윗은 그들에게 죽임당할뻔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보호하고 섬기면서 다윗은 모든 사람들을 다 리드하고 섬기는 훈련을 합니다. 비록 사백명 밖에 안되는 거칠은 무리지만, 이 무리를 인도하면서 나중에 유다지파, 더 나아가 이스라엘 전체를 이끌 수 있는 리더의 자질과 아량을 여기서 연습하게 됩니다. 다윗에게 광야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요람과 같은 장소였습니다.

결론 : 분명 고난은 힘듭니다. 그러나 영생이 있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보호하심을 믿고 의지하는 우리들에게 그 고난은 성장의 기회입니다. 신앙도 성장하고, 우리 리더십도 성장하고, 또한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평안하며 미래를 만들어 가는 성장의 시간입니다. 우리 모두가 지금의 어려움을 그런 성장의 기회로 삼아가시길 바랍니다.

글쓴이 susueoul,

0517-염려를 이기는 법(빌4:6-7)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너무나 많은 분들이 다 고생입니다. 조금 나아지는 줄 알았더니 이태원 사태까지 벌어져서 회복이 너무 멀어 보이네요. 이럴 때일수록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것은 현실의 어려움보다는 미래에 대한 염려입니다. 염려는 원어에서 생각을 나누게 하다, 생각이 집중되지 못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의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하고 반응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마비시키는 것이 바로 염려입니다. 오늘은 말씀을 통해서 염려를 이기는 법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1. 먼저 염려는 우리가 기도의 자리를 선택할 때 떠나갈 수 있습니다(6절).
염려는 아무리 우리가 이겨내려고 용을 쓰더라도 한번 자리잡기 시작하면 떠나보내기 어려운 질긴 놈입니다. 자기 자리에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늪에 빠지듯이 더 빠져들어가지, 빠져나오기 힘듭니다. 그런 염려는 나 혼자만의 자리가 아니라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면 극복될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것을 기도와 간구의 자리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귀한 은혜가, 성령의 역사가, 또 말씀의 권세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도 자기 생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선한 역사와 계획이 있는 축복의 자리, 승리의 자리로 옮겨가게 되는 겁니다. 염려나 근심, 걱정에 빠져 있지 마시고 선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리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2. 염려는 여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할 때 떠나갑니다(6절).
오늘 말씀은 너희 구할 것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는 우리의 기도의 태도가 어때야 하는지, 또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자기 욕구나 근심거리를 잔뜩 지고서 끙끙거리면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한숨 쉬면 내 마음의 짐은 전혀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불평은 좀 내려놓고, 지금 눈 앞에 보이는 한없는 장애물들이나 근심거리는 좀 제쳐두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에게 베풀어 오셨던 선한 일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전에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주셨는데, 이번에도 또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이런 은혜의 기억이 우리로 하여금 지금의 근심에 사로잡히지 않게 합니다. 또, 지금의 한계나 문제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허락하신 위로나 소망을 바라보면서 감사하기 시작하면, 조금 전까지 우리를 짓누르던 엄청난 염려의 무게가 훨씬 감해 집니다. 우리 모든 상황이 다 나쁜게 아니거든요. 위로와 소망이 있거든요. 그래서 기도하시려면 좀 감사거리, 위로와 소망거리를 찾아가면서 나의 간구를 하시길 바랍니다.

3. 염려는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품을 때 떠나갑니다(7절).
염려가 커지기만 하고 작아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생각과 지각이 눈 앞에 보이는 절벽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각이 무한하지 않고, 우리 지각은 항상 오류가 많습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생각하고 눈앞의 사소한 것들을 전부라고 혼동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와 감사를 하더라도 내 생각을 내려놓고, 대신 하나님의 마음인 평강과 말씀으로 내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내가 결심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내가 그렇게 다짐하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기도와 소망과 결심에 응답하시는 성령님의 역사가 내 안에 하나님의 평강으로 채우는 도우심이 나타나는 겁니다.

결론 : 분명 지금 모든 분들이 다 힘듭니다. 그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움과 능력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부정적인 현실을 뛰어넘는 소망이 넘쳐날 수 있습니다. 염려를 이기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0510-백 투 더 베이직(대하1:8-12)

코로나 사태로 모든 것이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교회 예배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만들어 가야하고, 우리의 삶도 뉴노멀에 맞추어서 비즈니스 하는 법, 사람 만나는 법 다시 하나씩 시작해야 합니다. 이럴 때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새로 왕이 된 솔로몬을 통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할 세가지 기초에 대해 묵상해 보길 원합니다.

1. 솔로몬은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주관자이심을 잊지 않았습니다(8절).
솔로몬은 왕이 되어서 첫 번째 한 것이 하나님께 일천번제로 나아가는 겁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꿈에 그에게 나타나셔서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십니다. 하나님의 질문에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아버지 다윗을 왕이 되게 하셨고, 자신을 왕이 되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실 뿐 아니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셨고, 왕위까지 허락하심을 잊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성공한 다음에를 봐야 하는데, 성공한 다음에는 자신의 노력과 똑똑함으로 성공했다고 자랑하기 쉽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신 분이시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왕위를 단단히 이어가기 어려운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돈이 많고 기술이 발달해도 작은 바이러스에 모든 선진국이 다 무너지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과 이 세상도 하나님 은혜 없이는 안됩니다.

2. 솔로몬은 두 번째 방법과 과정이 중요함을 잊지 않았습니다(10절).
솔로몬은 하나님께 한가지 지혜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가 부나 권력이나 영광을 구할 수도 있었고, 또는 평소에 미워하던 원수를 없애 달라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실 솔로몬이 정치를 잘하고, 나라가 부강해지면 저절로 해결되는 것들입니다. 솔로몬은 그 정치를 잘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 바로 지혜가 더 필요함을 알았던 것입니다. 지혜가 있어야 정치도 잘하고, 부강한 나라도 만들고, 그러면 나라의 부나 자기의 권력이나 영광이 저절로 늘어 감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사실 핵심을 잘 집지 못하는 사람들이 꼭 지엽적이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에 집착하는데, 그 지엽적인 것이라든지 겉모습은 결국 좋은 방법과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면 저절로 좋아지는 것들입니다. 우리도 지혜처럼 가장 기본적인 것, 필수적인 것을 추구하는 승리하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3. 솔로몬은 세 번째로 자기가 존재하는 목적과 의미를 알고 있었습니다(10절).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것은 사실 앞에 말한 부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리더로서 주의 백성을 잘 인도하고 잘 다스리기 위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왕으로 삼으셨는지 그 목적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리더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잘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서 힘써야할 핵심 목적이며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삶의 목적이나 사명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지금 이때에 이 자리에 우리를 보내셨을까요? 내가 이루어야할 거룩한 사명은 무엇일까요? 꼭 그것을 발견하여, 거룩한 목적을 이루어가길 바랍니다. 그게 베이직입니다.

결론 : 베이직을 놓치면 결과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코로나사태를 그나마 잘 이겨나가고, 전세계의 찬사를 받는 이유는 가장 기본적인 것, 준비되어 있었고, 검사와 치료 체계를 잘 만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 인생에서 사역에서 그렇게 베이직으로 무장되기를 바랍니다.

0503-그럼에도 불구하고(단6:9-11)

코로나 사태로 세상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습니다. 공장들도, 가게들도. 다행이 우리나라만은 코로나 사태가 줄어들어 황금연휴를 즐길 수 있게 되기까지 했으니까 감사하지만, 예전에 비해 모든 것이 다 줄어든 것은 맞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다 조심해야 하는 이때에 우리는 무엇을 놓치지 말고 해야 할까요? 오늘 다니엘의 상황을 보면서 우리의 위치를 잘 잡아가기를 바랍니다.

1.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사람이었지만 답답한 상황을 만납니다(9절).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오던 어린시절부터 하나님 앞에서 신실함을 놓치지 않던 신앙의 일꾼이었습니다. 이방신들에게 바쳐진 제물음식을 먹지 않고 정결하기로 작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로 자신의 나라를 점령한 바벨론과 바사의 최고위 관료로 성장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그렇게 권세를 가지게 된 다니엘에게도 또 시련이 닥칩니다. 정적들이 다니엘을 무너뜨릴려고 왕외에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는 엉뚱한 칙령을 왕을 속여서 받아냅니다. 그 칙령을 따르지 않으면 사자굴에 던져질 운명이구요. 신앙이 좋은, 하나님의 일꾼들도 이런 시련을 만나게 됩니다. 나라도 망했고, 지금은 억울하게 죽음에 처할 위기가 닥쳐오고요. 경건한 다니엘의 사방이 완전히 막힌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처럼 신앙도 약하고 정결함이 부족한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2. 다니엘은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불구하고 요동하지 않았습니다(10절).
다니엘은 왕 외에 아무 신에게 절하면 사자굴에 들어가는 칙령이 선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흥분하거나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내려 주신 은혜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더 큰 성공에 대한 욕심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버리지 않는 것을 더 중요시 여겼기 때문에, 죽을 각오를 하고 흔들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합니다. 집에 돌아와 ‘전에 하던 대로“ 행동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살아계심을 믿는 사람들은 현실의 어려움을 더 잘 이겨낼 능력이 생깁니다.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3. 상황이 암울해도 다니엘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섬김을 멈추지 않습니다(10절).
다니엘은 하나님께 절하거나 기도하는 것이 발각되면 죽을 것을 알면서도 평소처럼 집 2층에 올라가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합니다. 아무리 죽음의 위협이 있어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예배하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이 다니엘이 이 땅 가운데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며, 이미 은혜를 받은 사람이 그 은혜에 감사하는 적절한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니엘은 이 험난한 시간 속에서도 감사를 놓치지 않습니다. 힘들면 기도하기는 할 수 있어도 감사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자신이 철저하게 자격이 없고 가치 없음을 아는 사람들, 자신의 죄인됨을 철저하게 경험한 사람들이 그렇게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감사할 줄 아는 겁니다. 또 다니엘은 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을 놓치지 않습니다(23절). 결국 그 결과로 다니엘은 그 죽음의 입구에서 구함을 받습니다.

결론 : 코로나 사태는 너무 암울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의무와 고백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이미 너무 많이 받았고, 지금도 하나님 살아계시며, 우리가 한 모든 행동들이 다 마지막 때에 판단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처럼 삶 속에 예배와 기도, 감사의 태도, 믿음과 소망을 놓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0426-작은 믿음에서 큰 믿음으로(출4:2-4)

코로나 사태 때문에 예배 출석인원이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영상예배로 드린지 오래되어서 모든 분들이 얼마나 충실하게 예배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여러 분들이 느슨해졌을 거라 짐작합니다. 제가 평신도였어도 그랬을 거 같습니다. 사람은 편해지면 한없이 편해지는 것을 좋아하니까. 문제는 그나마 예배라도 드리던 신앙생활이 예배를 놓쳐도 아무렇지도 않은 신앙상태로 돌아간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제 현장예배에 집중하게 되더라도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것만 같을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이 도움이 됩니다.

1. 믿음이 없던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면서 믿음이 생기고 인생이 바뀝니다(3:4).
모세는 80세 인생의 황혼 때 장인의 양을 치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이 달라집니다. 희망도 목적도 없이 포기했던 인생에서 한 민족을 구해내는 거대한 역사를 이때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모세가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한 타지 않는 떨기나무 구경하려하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보낸다고 하실 때에도 모세는 의지도, 헌신도 없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오늘 구절에서 지팡이가 변하여 뱀이 되고, 손에 나병이 생기는 모습을 보면서, 즉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부터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실 일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생겨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하심을 보고나서 조금 신앙이 생기는 겁니다. 그것이 출애굽과정에서 더욱 커진 거구요.

2. 하나님과의 만남은 내가 가진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2절).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이름을 부르시고 명령을 해도 모세는 순종하지 못하다가, 하나님께서 이적을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에 대한 신뢰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이적과 능력을 모세가 가지고 있는 아무 쓸모없는, 존재 가치가 극히 하찮은 지팡이로부터 시작합니다. 모세는 평소에 지니고 있는 지팡이가 뱀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 아무 쓸작에 없는 자신의 인생이 그렇게 변화될 것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쓸모없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엄청난 능력의 도구와 통로로 변화되고 사용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뱀으로 변화되는 지팡이는 바로 앞에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첫 번째 증거로 사용되고요(7:10). 10가지 재앙이 모세가 익숙해진 이적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3. 하나님께서 찾아오셔도 모세가 순종해야 믿음의 성장이 가능합니다(3,4절).
모세의 쓸모없는 지팡이가 뱀으로 변화되는 이적도 모세의 순종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지팡이를 던지라 하실 때 모세가 순종해서 땅에 던지니까 뱀으로 변화되는 것이고, 그 꼬리를 잡으라는 명령에 순종할 때 다시 지팡이가 되는 것을 모세가 경험합니다. 출애굽의 놀라운 역사가운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붙잡아 주시고 모든 이적을 책임져 주시지만, 그 바탕에는 모세의 순종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작은 순종이 결국 출애굽 인도라는 큰 순종으로 이어지면서, 모세의 이적은 기껏 지팡이 뱀에서 홍해로 발전하는 겁니다. 겨자씨 같은 믿음이라도 생기니까, 산이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고(마17:20),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해지는 것입니다(욥8:7).

결론 : 예수님을 우리의 믿음이 처음부터 클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가오실 때 작은 순종을 하는 믿음으로부터 시작하여 큰 순종을 하는 믿음으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은 그런 큰 믿음이 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