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7_지금이 미래를 만들어갑니다(느6:14-17)

지금처럼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요? 우리의 교회도, 비즈니스도, 공부도 진척이 있을수가 없는데, 도대체 우리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 걸까요? 오늘 답답한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면서 미래를 만들어가는 느헤미야를 통해 지혜를 배우길 원합니다.

1. 느헤미야는 가장 힘든 시기,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미래를 만들어갑니다(15절).
느헤미야는 바사의 왕국에서 부귀영화를 다 버려두고, 예루살렘에 와서 성벽 짓는 일에 몰두합니다. 전세계로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고, 하나님의 나라의 기틀을 준비하는 거룩한 작업인데, 그의 상황이 녹녹치 않습니다. 먼저는 그에게 돈과 사람이 부족했습니다. 주변 상황도 전혀 협조적이지 않습니다. 주변에 있던 다른 민족들과 거주민들은 예루살렘 성벽 건설을 전적으로 방해하는 세력이었습니다. 군사적으로 공격하려고 했고, 느헤미야에게 회의를 하자고 꾀어내어 죽이려 했고, 심지어는 느헤미야 양 옆에 있는 유대인들과 혼인등을 통해 동맹해서 느헤미야의 힘을 빼고 두려움을 주려고 했었습니다(14절). 마치 재난에 둘러싸여 아무것도 못하는 우리와 같이 답답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느헤미야는 꿋꿋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합니다. 그것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겁니다. 제2성전이라 부르는 새로운 성전을 보호하고 그것을 돌볼 예루살렘 공동체가 안착할 예루살렘 성벽을 다 완성합니다. 아무리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적고, 상황이 답답해도, 우리는 꿋꿋이 미래를 준비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는 그 반석위에 지어집니다.

2. 느헤미야는 기도하면서 주님 의지할 때, 미래를 이루어갑니다(16절).
주변 상황이 이렇게 비협조적이고 호전적이면 우리 인간은 주눅들거나 두려워하거나 근심하거나 낙담하기 쉽습니다. 외로울 수밖에 없고,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그 모든 것과 싸우기에는 너무 무기력합니다. 느헤미야도 그래서 수시로 기도합니다(14절,느5:19). 애초에 이 예루살렘 성벽을 짓는 일에 헌신하는 것도 자신의 생각과 이익을 위해서 결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성전이 황폐해지는 것이 안타까와서 눈물로 기도하면서 모든 명예와 특권을 버리고 왔던 겁니다(느1:11;2:4-5). 느헤미야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에 헌신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서, 하나님께서 마음을 다해 도와주시는 겁니다. 지금 환난의 때이지만, 우리가 올바른 일,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 의지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는 적들에게 오히려 두려움과 낙담과 파멸을 가져다줍니다.

3. 미래를 만들어가는 지금은 우리의 헌신과 노력과 함께 만들어집니다(느5:14).
예루살렘 성벽 공사는 예루살렘에 돌아온 무리들의 소원이며 가장 시급한 일이었습니다. 성벽이 없으니까 적들이 습격해서 불태우기도 하고, 도적질을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느헤미야가 바사왕국에서의 모든 특권을 희생하고, 자신의 총독으로서의 권리도 희생하고 헌신했을 때, 성벽 공사가 완공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일은 이루어주시지만, 우리 인간의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느헤미야가 무작정 성벽만 지어대는 무식한 방식이 아니라, 적들이 느헤미야를 죽이려는 악한 계획도 파악해 내면서, 주변에 있는 적들을 칼을 들고 공사는 방식으로 지혜를 다해 대비함으로써 그 일들을 이루어냅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도움이 눈에 띄게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의지하면서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미래가 만들어져 가는 겁니다.

결론 : 지금 우리가 주눅들어만 있을 수도 없고, 낙담하고만 있을수도 없습니다. 그건 어둠이 우리에게 원하는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는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능력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만든다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씩 이겨나가야 할 것입니다. 함께 하나님의 선한 일에 헌신함으로 미래를 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

글쓴이 susueoul,

0920_분노는 나의 적(약1:18-21)

벌써 2.5단계 조치가 취해진지 2주가 지나고 현장 예배를 못한지도 4주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길어지다 보니 많은 분들이 지치고 낙망하기 쉬운 때라고 생각합니다. 몸도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교회와 멀어져서 신앙도 희미해지기 쉽고요. 그러나 이런 때 우리에게 귀한 은혜가 있습니다.

1. 그건 이런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신다는 겁니다(11절).
야곱은 지금 형 에서와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해서 장자의 축복을 받아버립니다. 그 바람에 형 에서는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고 작정을 하고요. 가족이 파탄 날 것을 염려한 아버지 에서와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을 지금 하란에 있는 외삼촌 라반에게 보낸 겁니다. 광야에서 야곱은 혼자서 위험한 밤을 보내야 합니다. 돌베개를 베고. 그런데 그런 사기꾼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모든 자격 없는 사람들에게 찾아오십니다. 2천년 전에 자격 없고 죄인인 우리 모두를 위해 예수님 보내주신 것처럼. 예수님도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던 38년된 병자에게 찾아가십니다. 그가 아무 도움이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고 병을 고쳐주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의 선물입니다. 가장 힘들 때, 가장 낙망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2. 우리 인간은 광야에 혼자 나가야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10절).
야곱은 이미 하나님에 대해서 알았습니다. 아버지 이삭과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었을테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때부터 야곱을 만날 준비를 하셨고, 이미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과 함께 거할 때에 야곱은 다가와 주신 하나님을 만날 생각을 안했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고, 자기가 잘난줄 알았으니까. 또 부모님과 형과 종들도 있어서 외롭지 않아서, 하나님을 찾을 생각을 안했던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려면 광야에 나가 혼자 있어야 합니다. 모세도 미디안 광야에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났고, 엘리야도 이세벨의 위협에 광야로 도망갔을 때 영광 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남을 만나지 못할 때 바로 이때가 하나님을 만날 때입니다. 힘든 시간 하나님 도움으로 이길 수 있고, 힘든 이 시간 하나님을 바라보고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을 때만나야 축복이지 아니면 큰 손해입니다(14절).
야곱은 사기꾼 주제였지만, 지금 하나님을 만나서 광야에서부터 다시 이땅에 돌아오는 그 험난한 나날동안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로 잘 이겨냈습니다. 헤매지도 않았고, 마지막으로 형 에서와도 화해할 수 있었고요.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하나님 만남으로해서 야곱은 신분이 바뀝니다. 14절에서 축복하는 믿음의 조상이라는 타이틀에 합당한 자로 성장해 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신 이유는 단순히 위로하고 격려만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 이상입니다. 야곱에게 힘을 주고 소망을 줘서 믿음의 조상에 부끄럽지 않은 자로 성장하도록 인도하시려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찾아오신 하나님과 함께라면 이 고난을 잘 이길 뿐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일꾼으로 거듭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결론 : 고난은 하나님을 만나기 좋은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시려고 이미 작정하신 때입니다. 이런 때야말로 하나님 바라봐서 하나님을 꼭 만나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가득 채워지시길 축복드립니다.

글쓴이 susueoul,

0913_거룩함과 영적 성장(엡4:21-24)

지난주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특별한 목적과 계획이 있으며, 그것은 거룩함으로 수렴된다는 것을 나눴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시리즈인데, 그건 바로 거룩함을 이루는 것이 결국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 자체라는 것입니다.

1. 거룩함은 영적 성장의 목적이자 내용입니다(24절).
오늘 말씀은 세상에서 부르심을 받아 특별한 존재,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이 이 땅에서 영적으로 성장하고 무장되려면(15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아무 공로 없이 그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피를 흘려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으로, 천국의 백성되는 권세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부름은 받은 이후에 예수님 모르던 시절처럼 그냥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 다 하고, 아무런 변화 없이 살아갈 수는 없을 뿐 아니라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둠 속에 그저 거하면서 생각 없이, 정처 없이 살아가는 죄인들처럼, 능력없이 소망없이 살아가는 존재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세상의 더러움을 떠나서(옛 사람을 버리고, 22절) 거룩함으로(새 사람) 나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마디로 영적 성장의 내용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들이 거룩해지는 것이고, 영적 성장의 정점에는 예수님, 즉 거룩함의 정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에게까지 자라가는 것은 거룩함에서의 성숙입니다.

2. 거룩함 자체가 능력으로 영적으로 성장했을 때 가지게 되는 축복입니다(딤후3:5).
성경 곳곳에서 우리에게 권하시는 것은 어린아이의 믿음에 머물러 있지 말고 영적으로 자라가라는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 챙겨줘야 하고 사랑해 줘야 겨우 신앙을 유지하는 어린아이의 믿음에서 자라서 혼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영적인 군사와 같은 존재로 자라야 한다고 권하십니다. 그때 생기는 능력, 지혜 모두 다 거룩함을 입은 사람들이 가지는 특성입니다(23,24절). 거룩한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모든 더러운 세상 것들은 멀리하기 때문에(22절), 사탄 마귀의 영향력을 미리부터 방어할 수 있습니다. 거룩함의 열매를 맺어갈 때에는 그 영혼 안에 경건의 능력이 있고, 경건의 훈련을 통해서 갖가지 약속된 권세와 능력을 받아 행사하게 됩니다(딤전4:8). 거룩함이 있어야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마5:13,16). 무엇보다 거룩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더 큰 임재와 영광으로 함께 동행하십니다.

3. 거룩함은 내가 노력해서 얻어지지 않고 사모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22절).
오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거룩함에 이를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크게는 두가지 지침인데,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것과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기 위해서 해야 할 구체적인 행위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것과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또 새 사람을 입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통해서 모든 일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실천들은 대부분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적인 행위입니다. 내 노력이나 능력으로 거룩함을 쟁취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옛 사람을 버리는 행위는 우리의 결정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인데, 그것은 우리 죄를, 죄악된 행위를 멀리하려는 적극적인 결단과 헌신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결론 :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함으로 부르셨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어수선한 이런 시기에도, 우리 손발이 묶여 있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거룩함에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이 세상 가운데 힘과 능력과 영향력이 됩니다. 옛 사람은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려고 헌신함으로 거룩함에 가까이 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글쓴이 susueoul,

0906_거룩함과 영적 성장(엡4:21-24)

지난주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특별한 목적과 계획이 있으며, 그것은 거룩함으로 수렴된다는 것을 나눴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시리즈인데, 그건 바로 거룩함을 이루는 것이 결국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 자체라는 것입니다.

1. 거룩함은 영적 성장의 목적이자 내용입니다(24절).
오늘 말씀은 세상에서 부르심을 받아 특별한 존재,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이 이 땅에서 영적으로 성장하고 무장되려면(15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아무 공로 없이 그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피를 흘려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으로, 천국의 백성되는 권세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부름은 받은 이후에 예수님 모르던 시절처럼 그냥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 다 하고, 아무런 변화 없이 살아갈 수는 없을 뿐 아니라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둠 속에 그저 거하면서 생각 없이, 정처 없이 살아가는 죄인들처럼, 능력없이 소망없이 살아가는 존재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세상의 더러움을 떠나서(옛 사람을 버리고, 22절) 거룩함으로(새 사람) 나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마디로 영적 성장의 내용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들이 거룩해지는 것이고, 영적 성장의 정점에는 예수님, 즉 거룩함의 정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에게까지 자라가는 것은 거룩함에서의 성숙입니다.

2. 거룩함 자체가 능력으로 영적으로 성장했을 때 가지게 되는 축복입니다(딤후3:5).
성경 곳곳에서 우리에게 권하시는 것은 어린아이의 믿음에 머물러 있지 말고 영적으로 자라가라는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 챙겨줘야 하고 사랑해 줘야 겨우 신앙을 유지하는 어린아이의 믿음에서 자라서 혼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영적인 군사와 같은 존재로 자라야 한다고 권하십니다. 그때 생기는 능력, 지혜 모두 다 거룩함을 입은 사람들이 가지는 특성입니다(23,24절). 거룩한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모든 더러운 세상 것들은 멀리하기 때문에(22절), 사탄 마귀의 영향력을 미리부터 방어할 수 있습니다. 거룩함의 열매를 맺어갈 때에는 그 영혼 안에 경건의 능력이 있고, 경건의 훈련을 통해서 갖가지 약속된 권세와 능력을 받아 행사하게 됩니다(딤전4:8). 거룩함이 있어야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마5:13,16). 무엇보다 거룩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더 큰 임재와 영광으로 함께 동행하십니다.

3. 거룩함은 내가 노력해서 얻어지지 않고 사모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22절).
오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거룩함에 이를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크게는 두가지 지침인데,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것과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기 위해서 해야 할 구체적인 행위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것과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또 새 사람을 입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통해서 모든 일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실천들은 대부분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적인 행위입니다. 내 노력이나 능력으로 거룩함을 쟁취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옛 사람을 버리는 행위는 우리의 결정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인데, 그것은 우리 죄를, 죄악된 행위를 멀리하려는 적극적인 결단과 헌신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결론 :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함으로 부르셨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어수선한 이런 시기에도, 우리 손발이 묶여 있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거룩함에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이 세상 가운데 힘과 능력과 영향력이 됩니다. 옛 사람은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려고 헌신함으로 거룩함에 가까이 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글쓴이 susueoul,

0830_거룩, 부르심의 목적 (살전4:7-8)

지금과 같이 답답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더 힘들어집니다.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더 긴장이 되고, 더 가슴아파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가지기 보다는 더 확신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유를 오늘 본문을 통해서 묵상해 봅시다.

1.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특별한 계획과 목적이 있습니다(7절).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무 이유없이, 목적도 없이 우리를 부르실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에 대한 특별한 계획이 있으셔서, 우리를 태초에부터 지으시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시기에,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연히 스쳐지나가는 나그네가 아니라, 분명히 이 땅에 목적이 있고 해야할 사명이 있는 사명자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이 정처없이 흘러가는 안개나 먼지처럼 허무해 하시는 분들은 이 사실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천지를 지으신 지혜의 하나님께서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불러주신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2. 하나님께서 거룩함으로 우리를 불러주신 것은 우리 자체를 사랑하심입니다(7절).
우리를 거룩함으로 부르셨다는 것은 업적을 위해서, 뭔가 이룰만한 사람이기에 부르신 것이 아니란 의미입니다. 거룩함으로 세상의 뭔가 큰 업적을 이루겠습니까? 그것을 욕심내는 사람은 쉽게 낙망하고 잘못된 길로 가기 쉽습니다. 엘리야도 갈멜산에서의 승리를 통해서 북 이스라엘왕국에 부흥이, 놀라운 변화가 오길 기대했다가 이세벨의 위협에 낙망하여 광야로 도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원래 계획이 아닌 업적이나 성과에 목이 매이면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리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셔서 불러 주심입니다(습3:17). 사랑스러운 존재로 옆에 함께 두시고 항상 은혜와 사랑으로 공급하시려고 거룩하게 즉 깨끗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면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때에도 우리는 아무 업적도 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거룩함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의 축복이 바로 우리 존재 자체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3. 거룩함으로 부르심은 하나님 곁에 두시고 생명과 은혜를 주려 하심입니다(48절).
이처럼 거룩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은 우리를 깨끗게 만드시고 옆에 두시려 하심입니다. 거룩함 없이는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거룩함 없이는 하나님의 영광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 예수님 옆에 두시는 제자들도 다 몸은 씻어놓은 거룩해진 존재들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의 근원되시고 은혜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 옆에서 그 은혜와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거룩하심으로의 초대를 무시하거나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모두를 부인하는 짓입니다(8절)

결론 : 세상이 답답해져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아는 사람이라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거룩케 만드시는 부르심은 우리를 하나님 곁에 있게 하려 하심입니다. 거룩함을 더더욱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글쓴이 susu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