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9_하나님 임재의 은혜(사6:5-8)


정치인들이 선거 전에 열심히 힘든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닙니다. 그러다가 선거가 끝나면 그런 방문도 싹 멈춥니다. 그들의 마음이 그곳에서 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은 어떠신가요?

1. 하나님께서는 이 죄악된 세상에, 우리 곁에 내려오셔서 임재하십니다(3절).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사야에게 영광을 보여주시면서 임재하십니다. 이사야가 왕도 아니요, 제사장도 아니요, 유명하거나 중요한 인물도 아닌데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임하여 주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가치 없고, 죄악되고 연약한 자들을 사랑하셔서 임재하시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도 높고 높은 보좌를 마다하시고 이 땅 가운데 오셔서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약속도 하십니다(마28:20), 성령께서 모든 영혼들 가운데 임하시는 것도 마찬가지로, 이 낮고 낮은 땅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임하여 주십니다. 그 귀한 임재를 우리가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말씀과 예배를 가까이 해야 하고, 또 그 은혜가 마음에 느껴지고 실재로 남아 있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성령의 감동을 사모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는 죄악된 세상에 임하셔서 그 자리를 거룩하게 만드십니다(5절).
하나님의 영광을 본 이사야는 죽게 되었다고 한탄합니다. 자신이 죄악된 존재인데, 하나님의 영광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거룩한 장소를 골라 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도리어 거룩하지 못한 곳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면, 또 하나님의 임재와 도움과 사랑을 사모한다면, 하나님께서 자의로 임하셔서 그 장소와 존재를 거룩하게 만들어 버리십니다. 모세가 하나님 만난 호렙산 떨기나무도 그렇습니다. 이 임재는 단순히 죄악된 장소나 존재를 거룩하게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거룩함을 받은 존재가 새로운 용기와 소망을 가지게끔 하십니다. 이사야도 나라가 망해가고 하나님의 거룩함이 사라지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임재로 미래에 대한 소망과 열정을 가지게 되고 헌신하게 됩니다.

3.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에게 인생을 걸만한 거룩한 사명을 갖게 하십니다(8절).
하나님의 임재 때문에 살아난 이사야는 하나님의 필요를 듣게 됩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서 갈꼬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미래에 대한 소망과 용기를 다시 얻게 된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름과 사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인생을 걸만한 거룩한 사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가 이사야서 53장 예수님의 사역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에게 회개의 권고와 미래의 희망을 주는 귀한 예언의 사역을 담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귀한 은혜입니다. 지금 코로나로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이지만,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 모두에게 허락되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임재로 인해 새로운 용기와 소망을 가지시고, 귀한 사명, 사역을 발견하여 축복된 인생 되시기 바랍니다.

0502_영이 강한 사람들(시 51:10~12)

지난주까지 우리는 육이 강하거나 혼이 강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을 나눴습니다. 겉으로 힘이 쎄 보이거나 정신이 강해 보여도, 여전히 육이나 혼이 강한 것이지, 영이 강한 것이 아님을 잘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영이 강한 사람의 특징은 무엇이며, 그 장점은 무엇일까요?

1. 성격이 강하거나 정신력이 강하다고 영적으로 강한 것이 아닙니다(겔11:19).
고집이 세다고, 깡다구가 있다고, 정신력이 강하다고 영이 강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은 에덴동산에서 범죄 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짐과 동시에 죽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잠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영의 자리에 하나님의 영이 공급되지 않으면, 우리 영은 돌 같이 굳어져서 죽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아니면 우리는 영적으로 전혀 깨어나지 못한 것이고, 영적 세계에 대해서 무지한 것입니다(계3:17; 고전2:11). 잠자는 영혼이 무슨 인지가 가능하겠으며, 무슨 능력을 발휘하겠습니까? 그저 사방에서 쏟아지는 영적 공격에, 약탈에 그냥 노출되어 당할 뿐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 영적 세계에 발을 딛었다고 하지만, 아직 우리가 영적으로 어리다면 우리는 여전히 어린아이가 무능력한 것처럼 무능할 수 밖에 없습니다(고전3:2).

2. 영이 강해지는 경우는 오직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충만해질 때입니다(11절).
영이 강해지는 경우는 오직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성령으로 충만해질 때입니다. 천하의 다윗도 하나님의 영이 거두어지면 평범한 사람일 수밖에 없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이 없으면 영이 강해질 수가 없습니다. 초대교회 제자들도 모두 성령이 임재하신 이후에 영적 군사로서 하나님의 나라 일꾼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영이 강해지는 경우는 하나님의 은혜로 한순간 성령이 임하시면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해가면서 영이 점점 더 강해져 갈 기회를 더 얻게 됩니다. 주님 말씀 가운데 머물며 말씀으로 공급받고 성장하면, 기도와 금식으로 우리 영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지고 순종하면(10절), 그래서 우리 영혼이 정결해지고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면, 우리 영은 점점더 강해지고 건강해지며 성장합니다. 바울 사도 말씀처럼 예수님 안에 살게 되면서 우리는 영적으로 사탄 마귀를 물리치고 세상을 이기는 군사로 성장해 가게 됩니다.

3. 영이 강한 사람들은 자기가 아니라 예수님이 마음에 가득차 있습니다(12절).
하나님의 영의 임재로 우리 영이 강해지기 시작하면 나타나는 현상이 구원의 기쁨과 소망이 넘쳐나고, 거룩한(자원하는) 영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예수님의 은혜와 임재 가운데 우리는 내적인 평안과 기쁨이 넘치면 웬만한 시련과 어려움은 능히 이겨낼 힘이 생깁니다. 즉 영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노력할 것은 자꾸 자기를 내려놓고, 주님 앞에서 겸손하게 낮아지는 겁니다. 자아가 아니라 성령님이 인도하시도록, 자기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 영이 강해지는 방법입니다.

결론 : 여러분 모두 육도 아니고 혼도 아니고 영이 강해지시길 바랍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넘치고, 성령의 동행하심으로 이 땅 가운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능력을 가지고 영적 전투를 승리해 나가시길 축복드립니다.

0425_혼이 강한 사람들(롬2:3-5)

육이 강한 사람들은 겉으로 모든 죄나 연약함이 잘 드러나서 비난 받기 쉽습니다. 잘못된 것을 깨닫기도 쉽고. 문제는 혼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내면의 세계가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겉으로 화를 별로 안냅니다. 욕심도 잘 부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은 말씀을 통해 혼이 강한 사람의 문제점에 대해서 같이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1. 혼이 강한 사람들은 사실 속으로 모든 악을 범하는 죄성을 가진 존재입니다(1절).
혼이 강한 사람들은 내적인 힘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화를 참기도 합니다. 욕심을 잘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바리새인처럼 종교생활도 잘합니다(눅18:12). 생활에 여유가 있어서, 좀더 종교적이어서 그런 경우입니다. 문제는 겉으로 윤리적이라고, 좀 경건하다고, 육이 강한 사람과 죄성에서는 별로 다를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혼이 강한 사람들은 겉으로 죄를 범하기보다는 생각과 마음으로, 속 사람이 죄성에 물들어 있으니까요. 하나님께서는 속 사람을 보십니다. 그런데 혼이 강한 사람은 자신 속으로 탐욕스럽고 사람들을 비난하고 미워하고 있는 등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모든 속으로 범하는 죄를 저지르면서 살고 있습니다. 더 나쁜 것은 자신도 속으로 죄를 짓고 있으면서 겉으로 죄가 드러난 사람들이나 육이 강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합니다. 자신의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합니다.

2. 혼이 강한 사람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원하지도 받지도 못합니다(4절).
혼이 강한 사람들은 자기 확신도 강하고, 똑똑하고 교양도 있어보입니다. 문제는 자신의 교양 있음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인정해 주지 않으면 기분 나빠합니다. 자기가 실수할 때는 상황이 그래서 그렇다고 정당화합니다. 이처럼 교만이나 자기 확신이 강해서 우리가 철저하게 부족해서 하나님 은혜 없이는 살수 없다는 사실을 잘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못 느낍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면서 자기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안위하려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풍성한 인자하심과 용서하심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합니다. 탕자의 형, 맏아들과 같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갈망하지도 않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받지도 못합니다.

3. 혼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직면, 성령의 역사로 고쳐야 합니다(마7:3).
혼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런 위선적이고 악한 모습을 제대로 직면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눈에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들보와 같은 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도 육이 강한 사람이나 실수한 사람들과 같은 죄성에 더하여 교만까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오직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터치 안에서 가능합니다. 육신의 연약함을 이기고, 자신을 이길 힘은 오직 하나님의 도움뿐입니다.

결론 : 여러분은 혼이 강한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자신의 위선적이고, 내적으로 타락한 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더 이상 교양이나 종교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조명을 통해 내적인 죄성을 보고 고쳐서 온전한 기독교인으로 거듭나시길 바랍니다.

0411_영, 혼, 육(살전5:23-24)

교회에 오면 항상 영에 관해서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영만 있는게 아니라, 혼과 육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혼과 육이 어떤 상태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방법이 무엇인지 같이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1. 육은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것인데, 타락으로 더렵혀졌습니다(갈5:19).
영만 이야기하다보면, 우리 육이 마치 원래부터 더러운 존재이고, 무시해야 하며,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죄가 우리 육신을 통해서 드러나니까. 그러나 원래 우리의 육신은 하나님께서 생명 주시려고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빚으신 아름답고 거룩한 지체입니다. 단지 아담의 범죄 이후 더럽혀지고, 죄로 물든 문화 속에 태어나서 더 죄악에 쉽게 노출되어서 계속 죄를 짓는 기관이 된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 직접 십자가 지심으로, 죄로 지은 모든 죄를 당신의 육신에 다 짊어지셨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의 육신은 더러운 존재가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진 거룩한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어갑니다. 육신을 미워하거나 함부로 대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2. 혼도 죄로 물들고 찢겨진 부분을 예수님의 보혈로 회복되어야 합니다(23절).
육이 겉으로 드러나 우리의 기관이라면, 혼은 겉으로 들어나지 않고 속으로 작용하는 기관입니다. 생각과 마음과 감정등이 있습니다. 이런 내면은 사실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고 말씀이 거하시는 장소입니다(계3:20).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우리 혼은 기쁘고 평안하며 감사해 합니다. 하지만, 아담의 범죄 이후 우리 마음 가운데 어둠이, 두려움과 근심과 걱정과 불평의 형태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변화되어 갔고요. 마치 허기진 사람이 허겁지겁 뭘 먹듯이,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할 장소가 죄로 인해 비어버린 우리 영혼이 뭐가 좋은지도 모르고 아무거나 세상적인 것으로 채워버린 것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은혜가 부어지면,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양심도, 상처난 마음도, 더럽혀진 생각도 고쳐져서, 하나님의 선한 것으로 가득찰 수 있게 됩니다.

3. 우리의 영은 생명의 영이신 성령이 임해서 공급되어서 살아납니다(창2:7).
혼과 육과 달리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임하셔야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이는 우리 영혼은 죽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깨어 있지도 활동하지도 뭘 느끼지도 못합니다. 인간을 창조하실 때 성령을 부어주신 다음에야 생령이 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임재가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연결되는 통로인 셈입니다. 그 성령의 임재로 인해 주님의 은혜를 받아, 우리 전 존재가 새로워지고 살아나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모든 영혼들에게 그 은혜가 이루어집니다.

결론 :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는 성령을 받아 새롭게 됩니다. 혼과 육도 죄로 파괴되었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이후에 성령이 임하시면서 새로워지고 씻어지고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육 전체가 구원의 기쁨과 충만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0403_부활의 선물: 자유(고전15:42-44)

오늘은 예수님께서 무덤 속에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죄의 징벌인 죽음은 아무 죄가 없으신 우리 예수님을 붙들어 둘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가 예수님 의지해서 또한 생명을 누립니다. 예수님 부활의 능력을 의지하는 우리들에게는 부활을 통한 생명과 승리 외에도 자유함을 선사받게 됩니다.

1. 예수님 부활 때문에 믿는 우리는 연약함에서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42절).
예수님 이전에 우리는 죄의 노예요, 사탄 마귀의 노략질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던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 인줄 알고,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들을 얻으려 하다가 얻지 못하고, 얻어도 보람도 없이 빼앗기기만 하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이후에 예수님께서 육신의 연약함을 극복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 능력 힘입어 연약함에서 자유로와지게 됩니다. 더 이상 두려움과 죄책감 가운데 사로잡혀 살지 않아도 됩니다. 바울사도를 통해 예수님 만난 도망 노예였던 오네시모처럼 예전에는 연약하고 불안하고 쓸모 없는 사람이다가, 예수님 만난 이후로 주님의 사역에 쓸모 있고,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것처럼요. 또 예수님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의 능력이 부어져서, 우리 혼자의 힘만으로 싸우지 않습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싸워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2. 예수님 부활 때문에 우리는 모든 욕된 것에서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43절).
부활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즉 육신의 고생과 모욕과 환난 가운데에서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으로 심다보면, 그것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열매로 돌아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연약해 보이고 징벌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고난을 통해서 복음을 심을 때, 생명의 열매,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얻게 됩니다. 우리 살아가면서 모든 가치 있는 생명과 일들은 다 고생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이들 낳아 돌보는 것도 고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생명의 열매, 보람된 양육의 열매를 누리게 됩니다.

3. 예수님의 부활 때문에 우리는 썩어질 허무함에서 자유함을 얻습니다(42절).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허무합니다. 다 썩어집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생명의 구원을 위해 애쓸 때, 우리의 수고는 썩어질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욕된 것을 통해 영광된 것, 보람된 것을 수확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한 우리의 수고는 영원한 것, 영광된 것,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가치 있는 것이 됩니다.

결론 : 예수님 부활은 단순히 교리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지금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며, 우리의 삶의 질과 내용을 바꾸는 혁명적인 가르침이자 비밀이요, 삶의 역동적인 능력입니다. 모든 영혼들이 예수님의 부활로 연약함과, 욕된 것과 허무함에서 자유함을 누리시길 축복드립니다.

글쓴이 susueoul,